6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빙하 사라져
어는점 고도가 5,000m 이상으로 올라간 것은 이례적인 일
"빙하 녹은 물이 많아질수록 상황 복잡·위험성 더욱 커져"
어는점 고도가 5,000m 이상으로 올라간 것은 이례적인 일
"빙하 녹은 물이 많아질수록 상황 복잡·위험성 더욱 커져"
온난화에 따른 이상고온현상 등으로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마터호른·몽블랑·융프라우 등 알프스산맥의 인기 탐방로가 속속 통제되고 있습니다. 산사태·눈사태의 등의 위험이 커져 탐방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알프스 최고 인기 봉우리인 마터호른(4,478m), 몽블랑(4,809m)의 인기 탐방로 일부가 통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탈리아 발레다오스타주 가이드협회의 에조 말리에르 회장은 가디언에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경로가 끊어졌다"며 "코로나19 봉쇄에 이어 또 다른 타격이다. 거의 2년을 빈손으로 보냈는데 또 일손을 놔야 한다니 난감하다"고 토로했습니다.
피에르 메이시 스위스 산악 가이드협회장도 "예년보다 너무 이른 시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보통은 8월이 돼서야 입산이 통제되는데, 6월 말부터 통제가 시작되더니 7월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위스 융프라우(4,158m) 가이드들도 지난주부터 관광객에게 등정을 추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이드들이 융프라우 등정을 막아서는 것은 거의 100년 만이라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스위스 융프라우산 같은 지점의 작년(오른쪽)과 올해 여름 모습을 비교한 사진. / 사진=스위스 연방 기상청
올여름에 최악의 폭염이 덮친 알프스 지역에서 6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빙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스위스 빙하감시센터, 브뤼셀 자유대학교 등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 알프스에서 가장 큰 '모테라치 빙하'는 하루 5㎝씩 경계선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북서쪽 '그랑에르트 빙하'는 적설량이 1.3m로 급감했고, 인도 카슈미르 빙하는 만년설이 봉우리 상단에만 간신히 걸쳐 있는 상태입니다.
아울러, 지난달 25일일 스위스 연방 기상청(MeteoSwiss)에 따르면 알프스산맥의 어는점(빙점) 고도가 27년 만에 최고로 높아지며 해발 5,184m까지 상승했습니다. 어는점 고도가 5,000m 이상으로 올라간 것은 이례적인 일로 기후변화가 이 같은 기록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스위스 기상청은 설명했습니다.
스위스 기상청은 작년 7월 21일과 올해 7월 22일 알프스 융프라우의 같은 지점에서 찍은 사진을 나란히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통해 작년 여름보다 올해 여름 만년설이 더 많이 녹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폭염과 함께 지난겨울 적설량이 부족했던 점도 빙하가 녹는 속도를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빙하는 겨울철 적설량이 많아야 여름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올 초 사하라사막 모래 먼지가 상승기류를 타고 대기 중에 흩어졌는데, 이 먼지가 유럽에 내리는 눈에 섞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흰 눈은 태양 빛을 상당 부분 반사하는 방식으로 빙하에 '보냉 효과'를 제공하고 얼음을 보충해 줍니다. 따라서 불순물이 섞인 눈은 순수한 흰 눈보다 태양 빛을 더 많이 흡수해 빨리 녹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위스 알프스 산악지역 발레주의 론 빙하에는 햇빛을 반사해 얼음의 소실을 막기 위한 흰색 천막이 덮어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빙하는 녹기 시작하면 매우 위험해집니다. 빙하가 꽁꽁 얼었을 때는 바위 같은 산악지형을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지만, 빙하 녹은 물(융빙수)이 빙하 밑을 많이 흐를수록 빙하 자체의 흐름도 빨라지고 산사태·눈사태의 위험도 커집니다.
실제로 지난달 3일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산맥 최고봉 마르몰라다 정상(3,343m)에서 빙하 덩어리와 바윗덩이가 한꺼번에 떨어져 탐방객 1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 얼음덩이가 산비탈을 타고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눈, 돌과 결합해 정상부의 인기 코스에 있던 등반객들을 덮쳐 대형 인명 피해를 낳았습니다.
빙하·산악 위험성을 연구하는 마일린 자크마르트 ETH취리히 대학교 교수는 "빙하 녹은 물이 많아질수록 상황이 복잡해지고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안유정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bwjd555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