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주요 공약이었던 '30분 통근 시대'를 위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구축을 서둘러 줄 것을 주문했다. 국토교통부는 철도망 개통을 앞당길 수 있도록 예비타당성조사 절차를 축소하고 공사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전망이다. 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기에는 이 사업이 국토 전역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20일 국토부에 따르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8일 대통령실에서 업무보고를 마치고 "하루하루 출·퇴근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절박함을 봤을 때 GTX 노선 운행 일자를 1~2년가량 빠르게 잡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각 부처와 협동해 개통을 최대한 앞당길 수 있는 스케줄을 짜보겠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GTX 사업은 총 4개 노선이다. GTX-A노선은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개통·운행할 예정이고, GTX-B·C노선은 착공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GTX-D노선은 계획안이 확정됐다. 이 외에 GTX-E·F노선이 윤 정부 임기 내 통과를 목표로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요구는 현재 진행 상황이 너무 느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GTX 조기 개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조원이 투입되는 국가 사업 평가를 졸속으로 하게 될 위험성과 부동산 시장 불안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GTX-C노선의 추가 정차역으로 지정된 경기 의왕시와 안양시의 일부 아파트 매매가격은 각각 37%와 35% 급등했다. 최근 하락세로 돌아선 수도권 집값을 다시 상승 반등시킬 수 있는 소지도 다분하다는 설명이다.
통상적으로 철도건설사업은 사업계획수립→예비타당성조사→기본계획 수립·고시→대형공사 입찰방법 심의→기본 및 실시 설계→공사 입찰 및 계약→공사 착공 및 준공 등 순서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예비타당성조사에 3~4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GTX 프로젝트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출·퇴근 교통난 해소도 중요하지만 대규모 공공사업에서 경제성 평가를 완화한다는 것은 재정 관리 기조에 어긋난다"며 "결국 후과를 떠안게 되는 것은 국민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국가철도망 계획이 수립된 이상 뒤집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업이 가장 많이 진척된 GTX-A노선도 여러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가 맡은 삼성역 복합환승센터 완공 예정 시기가 2028년 4월로 미뤄졌다. 당초 완공 목표 시기는 내년이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 사이에 건설되는 이 복합환승센터를 GTX-A노선이 지나기로 돼 있었다. 운정~동탄 사이 83.1㎞를 연결하는 GTX-A노선은 2024년 공사를 마치고 6개월간 시운전을 거쳐 전 구간을 열 예정이었다. 즉, 복합환승센터 완공보다 GTX-A노선이 먼저 개통하게 되는 셈이다. 삼성역에서 정차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교통의 요충지를 건너뛰면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노선이 강남으로 향하고 있는 점도 집값 양극화를 자극할 수 있다. 복수의 공인중개사들은 "GTX는 호재 중의 호재"라며 "강남권 GTX 정차 비중이 높아질수록 국토균형개발을 저해하고 수도권 집중화 비판이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