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안에 치안감을 부서장으로 하는 '경찰국'이 내달 2일 신설된다.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를 외청인 경찰청으로 분리한 지 32년 만에 행안부내 경찰업무 조직이 생기는 것이다.
또 행안부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도 제정된다.
행안부는 "지휘규칙에서 경찰 수사나 감찰 등에 대한 사항은 제외해 경찰의 중립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했다"고 밝혔다.
경찰청도 "경찰 제도의 본질적 이념과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선 경찰과 더불어민주당은 경찰국 신설을 두고 "명백한 위법" "정권이 권한을 오용해 시행령으로 경찰장악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경찰 내부망에는 "경찰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게 통탄스럽다" "지휘부는 도대체 뭘한 것이냐"등 격앙된 반응도 나오고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국민과의 의견 수렴이나 국회와 소통없이 경찰을 장악하는 행위는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발끈했다.
경찰과 민주당이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을 위해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것은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경찰과 민주당은 반발에 앞서 문재인 정권 시절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와 허물부터 통렬히 반성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는 것이 먼저다.
경찰은 지난 5년간 문 정부에 예속돼 그야말로 권력의 방패막 역할을 해왔다.
경찰은 문 정권의 핵심실세였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댓글조작사건을 수사하면서 김 전 지사 휴대폰을 압수수색하지 않는 등 사건을 덮으려 했다가 특검을 불렀다.
또 2018년6월 지방선거 때는 청와대로부터 첩보를 넘겨받아 야당소속인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측근비리 수사에 나섰다가 '선거개입' 비난을 자초했다.
당시 수사 책임자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사건 당시에는 진상 규명은 뒷전인 채 엉뚱하게도 사망원인을 밝히겠다며 피해자의 휴대폰 압수영장을 신청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인 이용구 전 법무차관이 음주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것도 경찰이었다.
어디 이뿐인가.
문 정권에 '촛불 청구서'를 들이밀던 노동계의 불법집회와 폭력시위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고, 친북단체 소속 대학생들이 대낮에 미국 대사관저 담을 넘고 기습농성을 해도 방관했다.
반면 대학 캠퍼스에 당시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20대는 건조물침입혐의로 검찰로 넘겼다.
국회를 방문한 문 대통령을 향해 "가짜 인권주의"라며 신발을 던진 50대 시민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과잉 대응을 서슴치 않았다.
'버닝썬' 사건 당시에는 '경찰총장'으로 불린 청와대 파견 서장을 제식구라며 감싸고 오히려 최초 신고자를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경찰이 이처럼 문 정권 눈치를 살피며 중요한 수사들을 뭉갠 것은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도한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세지고 조직도 커진데 따른 보은 때문일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지적한대로, 세상에는 무엇이든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법이다.
경찰은 현재 1차 수사권과 불송치 종결권을 갖고 있다.
검찰 지휘를 받지 않는 독자적 수사권까지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로 오는 9월부터는 경제·부패 범죄를 제외한 모든 수사도 가능하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활동이 금지되고 윤석열 정부 들어 청와대 민정수석실까지 폐지되면서 경찰의 정보 영향력도 엄청나게 커진 상태다.
더욱이 2024년부터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마저 경찰로 넘어간다.
14만명에 달하는 공룡 조직이 수사-정보-보안의 막강한 권한을 한손에 쥐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이처람 강화된 경찰권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없는 상태다.
프랑스 등 선진국의 경우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이 분리된 반면, 우리는 경찰청장이 직접 수사부서를 관할할 만큼 중앙집권적 구조다.
더구나 경찰청장에는 인사권, 예산권, 치안정책 권한까지 집중돼 있다.
감찰 기능도 경찰청 자체에 있을 뿐 외부의 감찰 시스템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를 감안할 때 경찰의 민주적 통제와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위한 감독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화살총 한발에 경찰 7명이 책상 아래로 숨은 지방의 한 파출소 사례에서 보듯, 경찰의 부실·과잉수사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철저한 감독과 견제는 절실하다.
행안부가 경찰국을 신설하고 경찰청장에 대한 행안부장관의 지휘규칙을 제정한 것도 이처럼 비대해진 경찰의 권한 집중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더구나 소속 청장에 대한 장관의 지휘규칙은 정부조직법상 소속청이 설치된 10개 부처 중 7개 부처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경찰이 지난 5년간 떡고물을 준 문 정권의 온갖 통제와 지시는 받아놓고, 이제 와 "윤 정권이 경찰 독립을 흔든다"고 반발하는 것은 이중잣대나 다름없다.
모든 것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경찰에는 영화 '범죄도시'의 주인공들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일선 현장에서 묵묵히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경찰관들이 대다수다.
그런 동료와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일부 정치경찰들이 이제라도 조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한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와 여당도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을 위해 어떤 경우에도 경찰 수사에 개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1991년 만들어진 국가경찰위원회에 실질적인 경찰 통제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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