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모전 냈다가 기술 뺏겨도…당할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 [스물스물]
입력 2022-07-09 08:32 
[사진 = 연합뉴스]

# '더컵'은 제품에 차키를 넣어 스마트폰으로 차량을 여닫게 해 주는 스타트업 카버샵의 디지털 키 제품이다. 승승장구하던 '더컵'은 출시 2년 만에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 5월 대기업 A사에서 유사한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버샵은 '더컵' 제품을 A사가 속한 B그룹 공모전에 응모한 전력이 있어 아이디어 유출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장병후 카버샵 대표는 "B그룹은 공모전에 제출한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로 계열사에 유사한 제품이 출시된 상황에 대해 정보 유출을 부정하고 있다"며 "소위 스타트업 상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금도 해당 공모전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런 문제가 또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디지털키 '키플' 또한 B그룹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빼앗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더컵'이 모터 방식으로 스마트폰과 차키를 연동한다면 '키플'은 전기 신호를 이용하는 디지털 키다. '키플'을 판매하는 스타트업 스페셜원 또한 2020년 6월 B그룹 공모전에 참여했고, 이듬해 5월 B그룹에서 분사한 업체가 '키플'과 유사한 제품을 내놓았다. '키플'을 판매하는 스페셜원의 이시권 대표는 "키플은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제품인데 공모전을 개최한 그룹에서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니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아이디어 탈취를 막기 위해 특허청은 지난해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시행했으나 현장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은 공모전 등의 거래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사용해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토록 하는 법안이다. 피해를 입은 스타트업 등은 민사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규모가 영세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소송전을 거쳐 배상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스타트업 등 영세 기업은 법정 대응에 나서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을 유지하기조차 벅찬 상황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과의 소송전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시권 스페셜원 대표는 "변리사 다수가 우리의 특허에 침해된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기업과 법적으로 다투는 건 쉽지 않다"며 "해당 기업에서 민사 소송을 하라는 식으로 나왔지만 소송 비용을 생각하면 선뜻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법적 대응을 하더라도 영세 기업은 그 승산조차 낮다.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도용한 사실을 법률적으로 입증하기가 까다롭고, 대기업은 이미 법률 자문을 받아 방어할 준비를 해놓는다. 법무법인 테헤란의 이수학 변호사·변리사는 "탈취한 기업에서 해당 아이디어 다른 곳에서 착안했다거나 내부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주장하면 피해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며 "내용증명을 보내더라도 아니라고 부정해버리면 그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장병후 카버샵 대표는 해당 그룹으로부터 "오해이며 자료가 유출된 적이 없다"는 답변만 받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아이디어 탈취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교육과 지원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영세 기업은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뿐더러 법률 대응도 미숙하기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태호 경기대 지식재산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지식재산권 관련 인력도 없고 경험도 부족해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등의 기관에서 방어 교육에 나서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공모전 참가 전에 입증할 자료를 준비해 두는 등 대비를 한다면 실질적인 아이디어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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