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권력 갈등 법무부 내에서도 표출
중간간부 인사에서 민변 출신 간부 거취 주목
중간간부 인사에서 민변 출신 간부 거취 주목
한동훈의 첫 한 달 "문재인 정권 지우기"
지난달 17일 취임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첫 한 달은 한 마디로 '문재인 정권의 흔적 지우기'로 요약됩니다. 한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전 정권에서 시행된 각종 정책을 속도감 있게 뒤집었습니다.
먼저 한 장관은 취임식 당일 첫 지시로 추미애 전 장관이 폐지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습니다. 검찰 조직 개편을 통해 전 정권에서 사라진 일선청 전담수사부를 복원시켰고 형사부 검사들도 인지수사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시절 검찰의 수사 상황 공개를 금지한 공보준칙도 수정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같은 움직임은 검찰 인사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취임 후 첫 인사인 지난 5월 인사에선 공석인 검찰총장의 직무대리 역할을 맡게 되는 대검 차장검사에 이원석(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이 임명됐고, 법무부 장관의 핵심 참모인 법무부 검찰국장와 기획조정실장에 각각 신자용(28기), 권순정(29기) 검사가 승진 발탁됐습니다. 지난 22일 두번째 인사에서도 검찰 내 '빅4'로 꼽히는 대검 반부패강력수사부장에 신봉수 검사(29기)가 영전했습니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특수통 검사들이 핵심 요직에 전진배치된 겁니다.
반면 친문 검사로 꼽히던 이성윤(23기) 전 서울고검장, 심재철(27기) 전 서울남부지검장, 이종근(28기)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은 일제히 '유배지'로 꼽히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습니다. 이르면 다음주 단행될 검찰 중간간부(차장·부장) 인사에서도 같은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무부의 골칫거리는 '민변 출신 간부'
법무부가 공격적으로 '문재인 정부 색깔 지우기'에 나서고 있지만, 손대기 어려운 영역도 있습니다.
바로 전임 정권에서 임명돼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민변(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 법무부 고위 간부들의 거취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명분으로 민변 출신 변호사들을 법무부 고위 간부로 대거 임명했고, 이 중 일부 간부들은 여전히 재직 중입니다.
이들 중에는 채용 당시 일반직 고위공무원으로 법무부에 들어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본인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내보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 내 일각에서는 새 정부와 '코드'가 다른 민변 출신 간부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민변 출신 간부들과 현 정권 법무부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와중에, 새 정부 출범 전후로 이들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일도 있었습니다.
민변 출신 간부와 법무부 검사 간 '술자리 언쟁'까지
사건은 지난달 초 박범계 전 장관 이임식 직후 열린 법무부 간부 회식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당시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를 놓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MBN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술자리에서도 법무부 소속 검사들이 검수완박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식에 참석한 민변 출신 A 간부가 술에 취해 법무부 소속 검사인 B 과장에게 반말로 질책성 발언을 했고, 이 과정에서 고성과 언쟁이 오고 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사람은 과거 A 간부가 변호사 시절 형사 사건 변호인과 담당 검사로 맞붙은 적이 있는데, A 간부가 해당 사건에서 B 과장을 상대로 승소했던 점을 언급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개 장소에서 모욕감을 느낀 B 과장이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A 간부의 고성과 반말은 몇 차례 더 이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A 간부는 MBN 취재진과 만나 "검수완박 사태와 관련해 검사들이 과거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한 사건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로 대응 방안을 제안하던 과정에서 생긴 일"일 뿐, "질책을 하거나 모욕감을 주려던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B 과장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느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다음 날 직접 사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술자리 언쟁은 단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법무부 내부의 갈등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 vs "현 정권의 내로남불"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검사들이 주로 임명되던 법무부 고위 간부 중 일부를 외부에서 발탁하는 법무부의 '탈검찰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주로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임명돼 결국 '코드 인사'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됐고, 이렇게 발탁된 간부들은 '정치 편향성 시비' 등 각종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민변 출신인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은 택시기사 폭행 사건으로 옷을 벗었고, 차규근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특정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법무·검찰 요직을 꿰차면서 공정성에 문제가 생겼고, 업무 면에서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컸다"며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조만간 단행될 후속 인사에서 민변 출신 간부들을 다른 보직으로 전보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미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곳곳에 검찰 출신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과거처럼 검사 위주로 돌아간다면 비판과 자정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한 경제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외부 인사를 채용해 공직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인사 취지와는 달리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거취가 불안해진다면 외부 수혈은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 서영수 기자 engmath@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