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손질로 주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에서 분양가격 상승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택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일반분양가가 9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오는 하반기 공동주택 분양가 규칙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 규칙이 시행되기 전까지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지 않은 사업지는 새 제도 아래에서 사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분양가 책정에 영향을 미치는 가산비와 건축비 항목에 사업 추진 시 필수적으로 지출하는 비용과 원자재 가격 움직임이 반영되면서 다수의 정비사업장 분양가는 현재 대비 최소 1.5%에서 최대 4%까지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사업자와 시공단 간 갈등으로 공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와 분양 일정을 잡지 않고 있는 동대문구 이문1구역·이문3구역, 서초구 신반포15차아파트가 대표적이다.
특히 둔촌주공 청약을 기다리고 있는 수분양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둔촌주공의 경우 지난 2019년 12월 조합이 책정한 분양가는 3.3㎡당 3550만원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개편안의 최소 인상폭을 적용하면 3603만원이 된다.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는 12억700만원에서 12억2502만원으로 총 1802만원 오르는 셈이다.
문제는 전용면적 59㎡다. 전용면적 59㎡의 분양가는 8억8750만원에서 9억75만원으로 1325만원이 뛰게 된다. 고가 아파트의 기준이 되는 금액인 9억원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면서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잔금은 대출을 실행해 치르겠다고 해도 7억원 이상이 수중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규제 지역 여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통상 9억원 이하 주택은 중도금 대출이 40~60%가량 나온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분양가는 미세하게 조정됐는데 타격은 너무나도 크다", "현금 있는 사람만 로또 먹는 거네", "당첨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행복회로 돌리고 있었는데 관둬야겠다", "진짜 중도금 대출 안 되는 거냐", "조합이나 시공사가 자사 보증으로 대출을 알선해 주지 않으면 답이 없지 않은가?", "목돈 마련 방법 좀 공유해 달라", "대출 규제에 또 발목이 잡혔다" 등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최종 분양가는 지방자치단체의 분양가심사위원회 심의에 맞춰 수정될 수 있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양시장의 중론이다. 미리 자금 확보 계획을 세워야 하는 만큼 수요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부처도 대책 마련을 유보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도심 내 저렴한 주택을 기다리는 수분양자의 입장을 고려해 과도하게 분양가가 오르지 않도록 상한선을 정하는 등 안전장치를 뒀다"며 "이번 제도 개선으로 분양가가 급등하는 것이 아니기에 중도금 대출 기준 상향 등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수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무주택자들은 대출 가능 여부에 따라 체감하는 바가 달라진다"며 "분양시장이 현금 부자들 차지가 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도권에서는 9억원짜리 아파트를 더이상 고가주택라고 표현하기 어렵다"며 "중도금 대출 현실화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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