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장사하는 맛이 있죠. 다들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지난 16일 오후 9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인근. 이 일대 상권에서 10년 가까이 음식점을 운영 중이라는 50대 자영업자 A씨는 "대출 갚으려면 한참 멀었다"면서도 매출 증대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A씨는 "주한미군 떠날 때도 타격이 컸는데 코로나19 터지고 나서는 말도 못했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사건도 있었고, 영업시간 제한 조치도 있지 않았냐"며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가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고 각종 모임과 회식 등이 부활하면서 팬데믹 기간 침체됐던 이태원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다. 2030 소비자들이 대거 몰려드는 가운데 자영업자들도 2년여 만에 수익이 나고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KB국민카드가 최근 발표한 '서울시 주요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시내 자영업자의 신용·체크카드 매출은 영업시간 제한 해제 이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KB국민카드는 오후 9시 이후 영업이 제한됐던 기간(작년 12월 18일~올해 2월 18일)과 방역 조치가 해제된 시기(4월 18일~5월 8일)를 대상으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매출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이태원동이 서울 행정동 232곳 중 매출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이날 이태원동에는 퇴근 후 저녁을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골목마다 몰려든 모습이었다. 인근의 한 대형 공영주차장은 오후 8시께부터 만차였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더 많은 인파가 이태원 일대를 찾았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골목. [이상현 기자]
대부분이 2030 세대였다. 연인 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음식점·주점으로 들어섰고, 외국인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퇴근 후 가까운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가는 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팬데믹 기간 사라졌던 '터키 아이스크림'도 다시 등장했다.대학 동기들과 이태원을 찾았다는 20대 직장인 B씨는 "코로나19 전에 대학을 다니면서 이태원에 종종 놀러 오곤 했다"며 "그때 재밌었던 기억이 떠올라 대학 친구들과 다시 이태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앞선 KB국민카드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시간 제한 해제 후 이태원동의 매출 건수는 198%, 매출액은 180%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 건수의 88%는 20대와 30대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권이 활기를 되찾아가는 만큼 비어있던 상가 곳곳에도 새 점포들이 들어서는 분위기였다. 주로 사무용으로 활용되는 3층 이상은 아직이었으나, 건물마다 1~2층 저층부는 대개 임대가 완료된 모습이었다.
글로벌부동산컨설팅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이태원·한남 상권의 공실률은 올해 1분기 16.1%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17.4%)보다 1.3%포인트 낮아진 수준이다.
이태원 일대 자영업자들도 상권이 살아나는 걸 반기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후 누적된 경제적 손실이 커 실질적인 수익 확보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30대 점주 C씨는 "입출국이 더 자유로워지면 국내로 들어와 이태원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당장은 찾아와주는 국내 소비자들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말했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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