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8시 22분 코엑스 K팝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광고가 멈추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75)가 등장했다.
백마를 타고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든 채 스페인의 지평선과 하늘을 바라보는 아브라모비치의 모습을 흑백으로 담은 30초 분량의 영상에는 작가의 '영웅(Hero)' 선언문이 함께 흘러나온다. "영웅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영웅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영웅은 우주다."
백마를 탄 여성의 모습은 마초적인 파워 게임에 의해 갈등이 고조되는 세계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았다. 작가는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지구에는 용기를 구현하고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도덕성을 지닌 부패하지 않은 영웅들이 필요합니다"라고 밝혔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아브라모비치의 첫 대체불가토큰(NFT) 작품으로 제작된 이 영상은 3개월 동안 서울을 비롯해 뉴욕 타임스퀘어를 비롯해 런던, 밀라노, 베를린에서 8월 31일까지 매일 밤 8시22분 동시에 상영된다. 전광판의 광고를 멈추고 예술작품을 상영하는 아이디어는 CIRCA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코로나 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술로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 조셉 오코너가 설립한 팬데믹 대안미술단체 CIRCA는 작년 5월에도 코엑스 K팝스퀘어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미디어아트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를 상영한 바 있다.'영웅'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전쟁 영웅이었던 그녀의 부친을 기리며 2001년 제작된 영상 작품이었다. 이번에 NFT로 발행되는 '영웅'은 다른 곳보다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 집약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 지분증명 블록체인 '테조스(Tezos)'에서 출시된다. NFT 발행의 구체적 계획은 6월 18일 아트바젤에서 CIRCA 아트 디렉터인 조셉 오코너와의 대담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아브라모비치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대형 회고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 관람객과 의자에 마주앉아 눈을 마주하는 행위예술을 펼쳤고, 이 퍼포먼스에 22년만에 찾아온 연인 울라이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세기의 이벤트로 회자되고 있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