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월세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 임대차시장에서 월세를 낀 거래가 급증하면서 10가구 중 4가구는 월세살이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기준금리 상승과 고강도 대출 규제에 전세 물량 감소가 겹치면서 월세를 선호하는 수요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1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다섯 달 동안 서울에서 월세가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3만5574건으로 확인됐다. 월세가 낀 계약이 차지하는 비율도 35.0%에서 39.2%로 치솟았다. 특히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 치를 초과하는 준전세의 비중은 20.8%에 달한다. 이와 관련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20%대에 진입한 것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월세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법원등기정보광장의 자료를 참고해도 지난달 전국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임대차계약 34만9073건 중 월세 거래는 20만1621건으로 전체 임대차계약 건수의 57.8%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보증금 상승과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대출이 필요한 임차인들이 이자보다 월세를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임대차계약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고 있고, 보유세 부담이 커진 임대인도 월세 수령을 희망하는 모습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된 이후 전국의 전세 보증금 누적 변동률이 평균 27.6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기준 평균 약 1억3000만원 올랐다. 시중은행에서 1억3000만원을 연 이자율 4%로 빌리게 되면 이자만 한 달에 45만원 가까이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금융권 옥죄이기로 대출을 받는 것이 까다로워진 상황에서 세입자가 원하는 금액만큼 대출 실행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전세가격전망지수도 100.7로 한 달 전보다 0.9포인트 상승했다. 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한 중개업자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전세수급지수도 135.0으로 한 달 전 대비 8포인트 상승했다. 전세 보증금은 오르는데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에서 전월세상한제로 2년 재계약한 아파트가 신규 계약으로 전환되면 평균 1억원 중반대의 추가 전세보증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경우 같은 집에서 계속 전세살이를 하려면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최근 은행권의 평균 전세대출 금리가 연 3.9%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한 달에 약 50만원의 추가 부담이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임대차시장 가격 불안이 지속되면서 월세에 대한 선호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02.3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전용면적 95.86m² 이하 중형 아파트의 월세 추이를 산출한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며 "월세는 목돈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등 월세계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면서 거부감이 걷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전세에 비해 반전세 매물이 더 빨리 소진되고 있다"며 "한국은행이 하반기에도 기준금리를 조정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월세를 찾는 발걸음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공급 불안을 진정시킬 대응책을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 대란 가능성을 관찰 중이지만 현재로서는 과대평가될 필요는 없다"면서도 "4년간의 인상분이 한꺼번에 전셋값에 반영돼 일방적으로 공급자 우위의 거래가 되지 않도록 세입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상생임대인·착한임대인의 경우 보유세 인센티브 등을 주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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