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주식매매계약(SPA) 직전 '백미당은 필요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앤컴퍼니로부터 백미당 분사 후 재매각을 보장 받았다던 홍 회장 측의 그간의 입장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지난 7일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 외 2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양도 소송 6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부는 증인으로 채택된 함춘승 피에이치앤컴퍼니 사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와 홍 회장의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서 거래를 중재한 것으로 알려진 함 사장의 입에 눈이 쏠렸다. 증인으로 출석하는 함 사장은 홍 회장 측에서 매각 주관사 역할을 하고, 원매자 한앤컴퍼니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온 핵심 인물이다.
지난해 4월 불가리스 사태로 남양유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질 당시 홍 회장은 남양유업 매각을 결심하고 20여년간 알고 지낸 투자은행(IB) 출신 함 사장에 매수자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슈로더증권 런던, 홍콩 지사에서 근무했던 함 사장은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대표이사를 지낸 1세대 IB맨이다. 현재는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외이사 역임 중이다. 홍 회장에게 한앤코를 소개한 것도 함 사장이다. 한 대표와 예일대 동문인 함 사장은 지난해 5월 두 사람을 소개했고, 그 직후 M&A를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같은 달 27일 홍 회장이 보유한 경영권 일체(의결권이 있는 보통주 53.08%)를 3107억원에 넘기기로 하는 SPA를 체결했다. 주당 가격은 82만원 수준이다.
이날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함 사장의 증언과 함 사장이 법원에 제출한 주요 문자메시지 기록이 공개됐다. 이날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 "백미당 필요없다던 홍 회장, SPA 체결 직후 변심"
이날 함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한앤코와 조건을 조율하는 초기 단계에 백미당을 홍 회장 측에 남겨두는 안에 대해 논의가 오고 갔다. 지난해 5월 11일 한앤코는 홍 회장 측에 경영권 거래를 위해 주당 70만원선에서 첫 가격 제안을 했다. 여기에 백미당을 포함한 외식사업부를 인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검토'하는 조건이 있었다는 게 함 사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홍 회장은 한앤코의 해당 제안을 거절했고 이후 몇 번에 걸쳐 매수가 인상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홍 회장 측이 백미당 분사에 대한 별도의 요구는 없었는 게 함 사장의 증언이다. 함 사장은 "주당 75만원에서 세 번 더 가격을 올렸는데, (이 과정에서 홍 회장은) 백미당에 대해 한번도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계약 직전까지 홍 회장이 백미당에 대한 요구사항이나 언급이 없자, 함 사장은 직접 백미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법정에서 함 사장은 "(주당) 가격은 올라가는데 저도 찝찝해 홍 회장께 백미당은 어떻게 하실꺼냐고 직접 여쭤봤다"면서 "홍 회장은 적자가 나는 부서이고 배우자(이운경 고문)가 이걸 맡아서 (경영)할 능력이 되는지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회장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LKB 측은 "계약 체결 전에는 홍 회장이 백미당을 포기했다가 계약 체결 후에야 가격에 불만을 품고 백미당 이야기를 꺼냈다는 거냐"라고 신문하자 함 사장은 "맞다"고 언급했다.
백미당에 대한 조건이 계약서에 반영하지 않은 배경에는 구두로 홍 회장이 '필요 없다'는 의사표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함 사장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다. 계약 파기의 주요한 배경 중 하나로 한앤코의 외식사업부 분사 불이행을 거론했던 홍 회장 측의 그간의 입장과 배치는 주장이다. 이를 둘러싼 양 측의 진실 공방은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 LKB '별도 합의서' 증거로 제출…함 사장 "본 적 없는 문서"
홍 회장 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LKB는 이날 '주식매매계약서 별도합의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본계약 외에도 '이면 계약이 존재했다'던 홍 회장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정에서 공개된 '별도합의서'에 따르면 ▲남양유업 고문직 보장 ▲본사 사무실 사용 및 차량, 기사를 제공하다는 내용과 함께 ▲남양유업 재매각시 우선협상권을 홍 회장이 갖는다는 중대한 내용까지 적혀 있다.
다만 해당 합의서에는 양 측의 날인은 찍혀있지 않았다. 함 사장은 "남양유업의 우선협상권 부여 여부가 이번 매각 과정에서 단 한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면서 "매매 계약 당시 본 적 없는 문서"라고 증언했다. 한앤코 측 역시 주식매매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효력 없는 문서라고 반박했다. 한앤코 측 대리인은 법정에서 "인수합병 계약서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완전계약조항조차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김앤장 쌍방대리 몰랐다'는 홍 회장…"여러번 고지했다"는 함 사장
홍 회장 측은 김앤장이 한앤코와 홍 회장을 동시에 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매 계약 체결 이후에야 알았다는 입장이다. 또 홍 회장 본인 의사와 달리 김앤장이 배임적 대리권을 행사해 계약이 체결돼 주식매매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한다.
쌍방대리의 논란에 놓인 이는 김앤장의 박종현 변호사와 박종구 변호사이다. 박종현 변호사를 홍 회장에게 추천한 함 사장은 "한앤코도 김앤장을 선임했다고 이야기 했고, 홍 회장도 이에 동의했다"고 이날 법정에서 밝혔다. 이어 SPA에 서명할 당시에도 고문위촉제안서 및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홍 회장에게 박종현 변호사가 '한앤코도 김앤장을 쓰고 있어서 바로 연락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에 LKB는 홍 회장 측이 쌍방대리에 동의하는 내용의 서류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함 사장은 "(김앤장 선임에 따른) 이해상충이 생길 일이 없다고 생각해 서면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조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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