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중견·중소업계에서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시 오히려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공개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고, 이를 납품가격에 반영하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대기업의 수요는 1.45% 감소하고 해외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1.21%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납품단가 연동제로 높아진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재화로 대체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조경엽 한경연 경제연구실장은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면 국내 산업생태계가 오히려 취약해질 것"이라면서 "보호하려는 중소기업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그 부작용은 근로자와 소비자에게로 전가되어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5개 원자재 산업과 12개 산업을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나누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시 대·중소기업 간 거래 관계, 일자리, 소비·투자·수출입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대기업의 총산출은 0.93% 감소하고 중소기업의 산출도 0.14%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같은 생산 감소는 노동에 대한 수요를 줄여 대기업에서 1만9000명, 중소기업에서는 1만7000명 등 총 4만7000명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실업자는 총 2만8000명 증가해 실업률이 4.0%에서 4.2%로 0.2% 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 실장은 "시장가격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면 보호하려는 대상이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 납품단가 연동제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며 "납품단가 연동제는 일자리 감소와 실질임금 감소를 가져와 근로자들도 피해를 본다"고 강조했다.
납품단가 상승에 따른 대기업의 손실은 재화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도 전가되는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연구 결과, 소비자물가지수는 14% 증가하고, 소비와 투자는 각각 0.14%, 0.25%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기업의 영업이익과 가계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정부의 법인세와 소득세 수입은 물론 소비위축에 따른 부가가치세 수입도 감소해 정부의 세수입은 0.2%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고서는 교역조건이 15%나 악화되면서 수출이 0.97% 감소하는 반면 수입은 0.46% 줄어드는 데 그쳐 무역수지가 약 10% 악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도 0.29%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이다.
보고서는 정부의 보호와 대기업의 선의가 아닌 경쟁을 통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공급망이 보편적인 생산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납품단가 인하와 납품품질 향상에 대한 요구는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 실장은 "상품의 회전 주기가 빨라지고, 새로운 혁신 기술이 물밀듯이 쏟아지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대·중소기업을 가리고 않고 치열해지고 있다"면서 "대·중·소 상생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경쟁이 아닌 정부의 보호와 대기업의 선의만을 기대한다면 글로벌 공급망으로부터의 퇴출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속적으로 선도기업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통한 끊임없는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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