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남도마실] "가는 봄 아쉬워라" 소소한 추억 찾아 전남 영광 한바퀴
입력 2022-05-30 16:49  | 수정 2022-05-30 16:55
한국의 대표 드라이브 코스 중간에 만나는 양귀비의 유혹
500년 느티나무가 포근히 감싸는 '숲쟁이'에서의 휴식
이른 더위가 여름 가는 길목을 재촉하지만, 아직 못다 핀 아쉬운 봄을 남도에서 느껴보면 어떨까요?

전남 영광군의 주요 길목은 요즘 화사한 꽃들이 가득합니다.

굽이굽이 바닷길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정취가 일품인 백수해안도로는 이미 잘 알려진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그 '봄바람길' 중간에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비각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정유재란 열부순절지입니다.
정유재란 열부순절지 / 사진제공=영광군청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삶을 다 메우지도 못한 시점에 왜군은 또다시 민초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당시 아홉 부인들은 왜란을 피해 이곳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구까지 피신했다가 '왜군들에게 굴욕을 당할 바에는 의롭게 죽자'고 결심한 끝에 칠산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주변 꽃동산에는 요즘 붉은 양귀비가 가득 피었습니다.

붉게 핀 꽃망울이 마치 아홉 부인들의 순절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비석은 못 찾아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꽃밭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한때 조기 파시를 이뤘던 법성포,

조기잡이 배가 드나들던 포구 뒤로는 품에 안듯 언덕만한 산들이 포구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그냥 지나치면 놓치는 숨겨진 비경이 있습니다.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제멋대로 자랐고, 발아래 싱그러운 풀마저 함께 어우러져 신령한 느낌마저 들게하는 이곳은 '숲쟁이'로 불립니다.

거창한 숲길은 아니지만 짧은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 멀리 영광대교와 칠산갯벌이 펼쳐치는 풍경이 일품입니다.


'국가명승 제22호'로 지정된 이 천년의 숲길 사이로 금계국이 노랗게 피어 여름을 맞이합니다.

그 아래 마당에서는 오는 2일부터 나흘간 '법성포 단오제'가 열립니다.

조선 중기부터 시작돼 500년 넘게 이어져 온 단오제는 바다에 만선을 기원하는 용왕제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단오제는 씨름대회와 민속놀이, 축하 공연 등 강릉 단오제와 양대산맥을 겨룰만큼 풍성한 행사가 이어집니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 영광을 찾아 천년의 숨결을 느껴 보는 건 어떨까요?

무심하게 찾아와도 '젊은 날의 추억' 한 편 정도는 남길 수 있습니다.
2022년 영광 법성포 단오제 / 제공=영광군청

[정치훈 기자 pressjeong@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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