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검찰 인사가 있었다. 누가 나가고 들어오는지 명단을 보고 있노라니, 미국 기업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만든 '자율과 책임'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떠올랐다. 넷플릭스 인사 철학의 핵심을 담은 이 문서는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자로부터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이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은 귀에 듣기 좋은 네 가지 가치를 회사 로비 대리석에 새겨놓았다. 정직, 소통, 존경, 탁월함이다. 그러나 이들 가치는 이 회사가 추구한 진짜 가치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가치와 관련이 있을까. "기업의 진짜 가치는 누가 보상을 받고 승진하고 떠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비롯해 문재인 정권에서 고위직도 올랐던 검사들이 일제히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 고검장과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 이정현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인사가 났다. 문 정권에서 한동훈 현 법무장관이 좌천됐던 바로 그 자리다.
반면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검사들은 대거 요직에 기용됐다. 대검 차장으로 승진한 이원석 제주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냈다.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른 송경호 수원고검 검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일선에서 지휘하고서는 좌천 당했던 검사다. 검찰 예산·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에 발탁된 신자용 서울고검 송무부장은 한동훈 법무장관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일 때 특수 1부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이번 인사로 드러난 현재 검찰이 추구하는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
현 정권 지지층은 정의의 회복,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한다. 문 정권은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을 비롯한 권력 수사를 막았다고 한다. 수사에 참여한 '올바른 검사'를 좌천시켰다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정권이 미운 털이 박혀 수차례 좌천됐던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이 그 증거라고 한다. 이들 올곧은 검사들을 전면에 기용하고, 정권 수사를 견제한 검사들을 한직으로 보낸 건 검찰을 정상화하는 정의의 회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야당 지지자들 입장은 정반대다. '현 정권에 충성하라'는 게 이번 인사가 드러낸 진짜 가치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사단이 핵심 요직에 기용된 게 그 증거라고 한다. 윤석열 정권에 충성하면 승진하거나 남들이 선망하는 보직을 받을 거라는 확실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치를 역행했다고 한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 중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아마도 일선 검사들의 마음이 그 답을 가장 잘 알 거 같다. 인사 소식을 들은 그들의 마음에 '살아 있는 현 정권 비리라도 열심히 수사하면 언젠가는 인사로 보답받는다는 뜻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이번 검찰 인사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일선 검사들의 첫 생각이 '어이쿠, 정권에 줄을 대야 승진하겠구나'였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인사가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향후 검찰 수사의 방향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은 권력에만 칼을 대는 게 아니라, 현 정권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 수사를 한다면 비정상의 정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면 '복수'라는 반발이 나오고 대한민국이 두 쪽이 나오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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