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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테라 충격은 코인 시장의 리먼사태"…가상화폐 시장 쑥대밭
입력 2022-05-12 17:56  | 수정 2022-05-12 23:08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설치된 비트코인의 시세판 앞을 한 고객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테라·루나 코인 사태 여파로 국내 가상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9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40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충우 기자]
◆ 코인시장 충격 ◆
K코인이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가 연일 폭락하면서 가상화폐 시장의 뇌관이 된 것이다.
12일 루나와 테라는 각각 5센트, 26센트까지 밀렸다. 루나는 지난달 119달러까지 치솟으며 가상화폐 시가총액 순위 10위권 내에 들었지만, 최근 일주일 새 99% 폭락했다. 지난달 5일 50조원에 달했던 루나 시가총액은 12일 현재 6786억원까지 폭락했다. 스테이블 코인 가운데 3위 규모로 시총 180억달러에 달했던 테라 역시 반 토막이 났다.
테라는 코인 1개당 가치가 1달러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이고, 루나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를 뒷받침하는 용도로 발행되는 가상화폐다.
변동성이 큰 다른 가상자산과 달리 가격을 달러에 연동시켜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됐지만, 최근 테라 시세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테라 급락이 자매 코인인 루나 급락으로 이어지고, 루나 하락은 다시 테라 가격 하락을 촉발하는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 블록웍스에 따르면 토큰 서비스 플랫폼 시큐리타이즈의 아딜 압둘랄리 관리 책임자는 테라 사태를 두고 "스테이블 코인의 슬픈 결말"이라고 전했다.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현상을 피하지 못하면서 테라가 폭락하고 루나도 추락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며 "테라가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세계에서 애정의 대상이었으나 죽음의 소용돌이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비트코인도 이날 2600달러 선이 무너졌다. 테라와 루나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35억달러어치 비트코인을 사들였던 테라폼랩스가 비트코인을 대량 매도하고 있거나 매도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CNBC는 "가상화폐 매도 압박에 테라 가격이 무너졌고 시장에 더 큰 패닉을 초래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나·테라 폭락의 파장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테라의 추락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리먼브러더스 모멘텀이 되는가"라고 보도했다. 가상화폐 플랫폼 업홀드의 마틴 히에스보에크 블록체인·암호화 연구 책임자는 "투자자들이 루나와 테라를 믿지 않는다"며 "자금을 빼내는 뱅크런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가상화폐 가격 급등은 기관투자자들의 시장 참여가 큰 원동력이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진 테라 사태는 포트폴리오로서의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가상화폐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번 사태가 금융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산 스테이블 코인 폭락 사태가 가상화폐 시장에 충격파를 일으키자 미국 의회도 나섰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인 셰러드 브라운 민주당 의원은 이날 테라 폭락 사태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의회와 감독 당국 차원의 규제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공화당 간사 팻 투미 의원도 스테이블 코인이 결제 자동화를 이끌 잠재력이 있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전날 스테이블 코인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루나와 테라는 국내 거래소에서도 많이 거래됐던 만큼 국내 투자자들도 패닉에 빠졌다. 비트코인 가격까지 급락하는 등 가상화폐 폭락세가 이어지자 코인 투자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게시판에는 "차곡차곡 모은 월급으로 투자했는데 일주일 만에 다 날렸다" "다시 오를 희망이 있을까요? 이 가격대에라도 매도해야 하나요?"라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모두 루나를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빗썸 관계자는 "루나의 큰 시세 변동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며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되며 거래소에서 기존에 갖고 있는 코인을 매도할 수는 있지만 추가로 매수할 수 없고 관련 입출금도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루나와 테라는 애플 엔지니어 출신인 권도형 최고경영자(CEO·30)가 설립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하는 가상화폐다. 테라폼랩스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지만 대표가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루나와 테라는 '김치 코인'으로 분류된다. 권 CEO는 테라와 루나 폭락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테라를 담보로 15억달러 구제금융 조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테라폼랩스 국내 법인인 테라폼랩스코리아가 지난달 30일 해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권 CEO는 '먹튀 의혹'에 휩싸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권 CEO의 잠적설까지 나오고 있다. 한 커뮤니티에는 "희대의 조선 사기꾼 권도형" "루나 창업자 권도형 튀었다" "권도형 지금 싱가포르에 있을 거다" 등 반응이 줄을 이었다.
[김덕식 기자 / 김정석 기자 /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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