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정 아이파크 전면 재시공 ◆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를 전면 철거하고 재시공하기로 한 HDC현대산업개발의 결정은 국내 건설 환경에서 전례가 없는 일로 평가된다. 사고 발생 이후 기존에 맺었던 수주 계약이 취소되는 등 홍역을 치른 데다 HDC현산을 최고 수위로 징계해야 한다는 관계당국의 강도 높은 압박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실제 HDC현산은 기존에 맺었던 수주 계약이 취소되는 등 사고 발생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C현산은 지난달 8일 대전 도안아이파크시티 2차 신축 공사에 대한 계약 해지를 공시했는데, 계약금액만 1조972억원에 달한다. 지난달 13일에는 계약금액이 1830억원인 광주 곤지암역세권 아파트 신축 공사 건도 계약이 해지됐다. 광주 운암3지구를 비롯해 앞서 수주한 정비사업 조합 측으로부터 시공사 참여 배제 요구를 받기도 했다.
관계당국이 사고 책임에 대한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HDC현산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에 대해 서울시로부터 8개월의 영업정지를 받았다. 서울시는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대해서도 추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데, 국토교통부는 두 차례의 대형 사고를 낸 HDC현산에 대해 '등록말소'라는 중징계를 내려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한 상태다.
정치권의 거센 질타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겸 인수위 기획위원장도 같은 달 29일 현장을 방문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난다면 기업은 망해야 하고 공무원은 감옥에 가야 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HDC현산은 3700억원 규모의 비용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전면 재시공에 따른 철거·시공비와 입주 지연으로 인한 주민 지체보상금 등이 반영된 숫자다. HDC현산은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충당금 1754억원을 선반영한 데 이어 올해 추가로 2000억원의 비용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2019년과 2020년 HDC현산이 거둔 한 해 영업이익이 5500억~58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화정 아이파크에 투입되는 총비용은 1년 영업이익의 절반을 상회한다.
건설업계도 이번 결정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시공 중인 건물을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금성백조는 2014년 대전광역시 죽동 예미지 아파트 108동을 철거한 뒤 재시공했는데, 대상이 1개 동에 불과한 데다 공사 초반에 철거 결정을 내리고 입주 시기에 맞춰 공사를 완료했기 때문에 후폭풍이 크지 않았다.
한 대형 건설사 주택사업 담당 임원은 "구조를 보강한다고 한들 입주자들이 만족하겠나. 여론만 악화시킬 것이 뻔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면 철거·재시공을 하지 않고서는 해결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HDC현산의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201동 외에 단지 내 건물들도 안전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추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한다면 중대재해법을 피해가기 어려운 구조다.
건설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HDC현산의 재시공 결정까지 나오면서 현장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제 '부실이 일어나면 돈이 더 많이 들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건설업계 전반에 퍼질 수밖에 없고, 시공 단계에서도 더욱 엄격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창욱 건물과사람들 대표도 "업계의 화제가 '사고'에만 초첨이 맞춰져 있다 보니 대응책 마련에만 급급한 상황"이라며 "중대재해법,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가뜩이나 업계가 위축됐는데 한동안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는 지난 1월 11일 201동 외벽이 붕괴돼 현장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국토부는 지난 3월 건설사고조사위원회 조사를 토대로 무단 구조 변경과 가설지지대(동바리) 조기 철거, 콘크리트 강도 미달 등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확인했다. 광주지검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주택법 위반,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HDC현산 현장소장 등 6명을 구속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기소한 상태다.
[유준호 기자 / 이석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를 전면 철거하고 재시공하기로 한 HDC현대산업개발의 결정은 국내 건설 환경에서 전례가 없는 일로 평가된다. 사고 발생 이후 기존에 맺었던 수주 계약이 취소되는 등 홍역을 치른 데다 HDC현산을 최고 수위로 징계해야 한다는 관계당국의 강도 높은 압박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정몽규 HDC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수습과 관련된 추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4일 서울 용산구 사옥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정몽규 HDC 회장은 이번에 전면 철거·재시공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회사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입주 예정 고객, 주변 상가 상인 여러분과 피해 보상을 위한 대화를 이어왔지만 입주 예정 고객의 불안감이 커져왔고, 회사 또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기업가치와 회사에 대한 신뢰 또한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실제 HDC현산은 기존에 맺었던 수주 계약이 취소되는 등 사고 발생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C현산은 지난달 8일 대전 도안아이파크시티 2차 신축 공사에 대한 계약 해지를 공시했는데, 계약금액만 1조972억원에 달한다. 지난달 13일에는 계약금액이 1830억원인 광주 곤지암역세권 아파트 신축 공사 건도 계약이 해지됐다. 광주 운암3지구를 비롯해 앞서 수주한 정비사업 조합 측으로부터 시공사 참여 배제 요구를 받기도 했다.
관계당국이 사고 책임에 대한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HDC현산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에 대해 서울시로부터 8개월의 영업정지를 받았다. 서울시는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대해서도 추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데, 국토교통부는 두 차례의 대형 사고를 낸 HDC현산에 대해 '등록말소'라는 중징계를 내려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한 상태다.
정치권의 거센 질타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겸 인수위 기획위원장도 같은 달 29일 현장을 방문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난다면 기업은 망해야 하고 공무원은 감옥에 가야 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HDC현산은 3700억원 규모의 비용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전면 재시공에 따른 철거·시공비와 입주 지연으로 인한 주민 지체보상금 등이 반영된 숫자다. HDC현산은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충당금 1754억원을 선반영한 데 이어 올해 추가로 2000억원의 비용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2019년과 2020년 HDC현산이 거둔 한 해 영업이익이 5500억~58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화정 아이파크에 투입되는 총비용은 1년 영업이익의 절반을 상회한다.
건설업계도 이번 결정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시공 중인 건물을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금성백조는 2014년 대전광역시 죽동 예미지 아파트 108동을 철거한 뒤 재시공했는데, 대상이 1개 동에 불과한 데다 공사 초반에 철거 결정을 내리고 입주 시기에 맞춰 공사를 완료했기 때문에 후폭풍이 크지 않았다.
한 대형 건설사 주택사업 담당 임원은 "구조를 보강한다고 한들 입주자들이 만족하겠나. 여론만 악화시킬 것이 뻔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면 철거·재시공을 하지 않고서는 해결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HDC현산의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201동 외에 단지 내 건물들도 안전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추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한다면 중대재해법을 피해가기 어려운 구조다.
건설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HDC현산의 재시공 결정까지 나오면서 현장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제 '부실이 일어나면 돈이 더 많이 들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건설업계 전반에 퍼질 수밖에 없고, 시공 단계에서도 더욱 엄격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창욱 건물과사람들 대표도 "업계의 화제가 '사고'에만 초첨이 맞춰져 있다 보니 대응책 마련에만 급급한 상황"이라며 "중대재해법,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가뜩이나 업계가 위축됐는데 한동안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는 지난 1월 11일 201동 외벽이 붕괴돼 현장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국토부는 지난 3월 건설사고조사위원회 조사를 토대로 무단 구조 변경과 가설지지대(동바리) 조기 철거, 콘크리트 강도 미달 등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확인했다. 광주지검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주택법 위반,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HDC현산 현장소장 등 6명을 구속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기소한 상태다.
[유준호 기자 / 이석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