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단순한 사건도 무수히 많은 정보로 구성된다. 어떤 사건이든 초 단위로 기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두뇌가 이 많은 정보를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당연히 우리 두뇌는 중요한 정보와 버려야 할 정보를 구분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정보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그 재구성된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건을 재구성할 때 기준이 되는 건 '사람의 의도'다. 그 사건의 중심이 된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그 사건과 관련된 일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는 여러 심리 연구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인간은 상대의 마음, 즉 의도나 동기를 해석할 수 없다면 사건을 구성하지 못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한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찰 수사권 박탈을 예로 들어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작업이 계속 추진됐다. 검찰에는 6대 중대 사건 수사권만 남겼다. 민주당은 6대 사건 수사권까지 검찰에서 빼앗겠다고 한다. 검수완박, 다시 말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두뇌 능력이 제한돼 있으니 그럴 수도 없다. 사람들은 사건을 재구성해 중요한 정보만을 기억한다. 그 기준은 '의도'라고 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비롯해 상당수 국민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의도를 '현 정부의 권력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본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현 정권이 막았다고 생각한다. 대선 패배로 정권을 잃게 돼 더는 권력으로 검찰 수사를 막을 수 없게 됐으니, 이참에 아예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민주당의 의도를 해석한다. 이 의도를 기준으로 검찰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해석한다. 당연히 검수완박은 권력 비리 수사를 막으려는 불의한 짓이 된다. 이를 막는 게 정의의 실현이 된다.
반면 검수완박 지지자들은 그 의도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그들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지면서 과도한 권력기관이 됐다고 주장한다. 그 권력을 검찰이 자기 권력 강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했다고 믿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 칼날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할 거라고 걱정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검수완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이익을 위해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의 잘못된 의도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의도를 해석하면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중요시하는 정보, 즉 권력 비리 수사를 막으려는 정권의 행태는 거르게 된다. 보지 못하게 된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거르는 정보, 즉 검찰의 자기 이익 추구는 확대해 보게 된다. 검수완박 지지자들은 오로지 그것만 보고 있는 듯하다.
양측은 일반 국민들도 자기처럼 사건을 재구성해 주기를 바란다. 검수완박과 관련된 정치인들과 검찰의 의도를 자기네들처럼 해석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편으로 더 많은 지지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민주당은 그 경쟁에서 지고 있다. '위장 탈당 꼼수'까지 쓰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수완박 법안 논의를 위한 안건조정위원회가 열리면 무소속 몫으로 참여하기 위한 꼼수다.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3명, 무소속 1명, 국민의힘 2명으로 구성되는데, 무소속 의원 찬성을 받으면, 4 대 2로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탈당 꼼수로 안건조정위를 장악하려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이런 꼼수까지 쓰면서 검수완박 법안의 선한 의도를 인정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다.
이미 자기 편 안에서도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민 의원의 탈당은 "민주주의 가치를 능멸한 것"이라고 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묘수가 아닌 꼼수"라고 했다. 사실상 민주당 소속이나 다름없는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민주당 의원한테) '검수완박을 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 사람 20명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범여권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민주화를 이룬 선배들을 우상처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우상들이 괴물이 되어 가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라고 했다.
민주당은 점점 더 많은 국민들로부터 검수완박 법안의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권력비리 수사를 막기 위한 게 진짜 의도라는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들이 민주당의 의도를 그렇게 해석할수록, 검찰 개혁의 근거가 되는 사실들은 잊힐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을 철회하는 게 옳다. 정말 검수완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꼼수까지 쓰며 밀어붙이는 건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것이다. '민주당'이라는 이름까지 배신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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