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2차 내각 인선 발표를 앞두고 유독 분위기가 적막한 부처가 있다. 바로 통일부다.
장관직을 맡겨달라고 공개적으로 손들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유력한 후보자로 언론에 거론되는 학자와 현직 의원들은 모두 손사래를 친다. 길어진 남북 간 경색국면이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 장관 인선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12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까지 거론된 '북한경제 전문가'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저보다 저 잘하실 분이 많을 것"이라며 분명하게 고사했다. 정치인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도 '인수위 활동이 끝나면 여의도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잠시 통일부 장관 후보로 거명됐던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아예 인수위원직을 내려놓고 '내각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수위 안팎과 여권에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캠프 때부터 대북정책 공약을 총괄했던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이 가장 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래도 관록있는 정치인 출신이 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관련 상황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대북정책은 윤석열 차기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기조를 완전히 뒤집어야 하는 분야"라면서 "예상되는 민주당의 반발에 맞서면서 이 작업을 하려면 분명한 보수적 대북관과 정치적 전투력을 갖춘 의원 출신이 필요하다는게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관련 경력이 있는 전, 현직 의원 출신들을 중심으로 후보군이 꾸려져 검증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尹정부 대북정책 '풀이과정' 아직 없어
통일부는 분단 현실이 낳은 한국 정부의 특수한 부처다. 현실적 위협인 동시에 화해·협력 대상인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을 주 임무로 한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통일 기반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사명이다.
차기 윤석열 정부는 이같은 통일부 고유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딜레마다. 통일부가 남북 간 교류·협력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먼저 큰 틀에서 남북관계가 풀려야 하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 대선 캠프와 인수위 어디에서도 정작 남북관계를 풀어낼 구체적인 방편은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와 답은 있는데 '풀이과정'이 없는 셈이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혹은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정부의 교류협력 제안에 일체 응하지 않는다. 남한에 어떤 정치적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든 북한은 항상 그랬다.
■ 남북 긴장구도 속 입지축소 가능성 커…역대정부 유력자 출신 장관도 뜻 못펴
남북 간 강 대 강 구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통일부가 고유의 역할을 수행할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치적 역량이 출중한 장관이 오더라도 상황이 달라지기 어렵다. 자칫하면 남북회담장 근처에도 못 가보고 강연과 축사만 하다 임기가 끝날 공산이 크다. 거론되는 정치인 출신 인사들도 이러한 상황을 모르지 않기에 구태여 주겠다는 장관직을 마다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는 대통령 최측근이자 대통령실장을 지낸 류우익 장관이 통일부에 왔지만 의미있는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는 민주당의 대표적인 대선 잠룡이자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지낸 이인영 장관이 왔지만 남북관계 경색과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뜻을 펼치지 못했다.
참여정부 당시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김근태와 정동영 두 사람이 서로 통일부 장관 자리에 가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文정부 역량 쏟았지만 성과 못내…尹정부선 관심도 줄어들듯
폭파되고 있는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사진 = 연합뉴스]
윤 당선인을 비롯해 차기 정부에서 중용될 인사들이 공히 대북정책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인수위는 대선 전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주장했던 '통일부 폐지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남북관계 측면에서 크게 점수를 따겠다는 의지 자체가 크지 않다는 기류는 여러 경로로 감지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외교력을 총집중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지만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도 대북정책에 대한 당선인 측의 관심을 낮춘 원인일 것이다.한미동맹과 대북 억제력 강화, 비핵화 논의 등은 국가안보실이나 외교·국방부가 키를 쥐고 통일부에는 크게 힘을 싣지 않겠다는 윤 당선인 측 의도가 역력하다. 심지어 이번 인수위는 해당분과 명칭에서조차 '통일'을 뺐다. 익명을 원한 대북 전문가도 "차기 정부 외교안보라인에서는 대북, 통일 정책을 '케이크 위 체리' 정도로 인식하는 게 아닌지 싶다"면서 기대를 낮췄다.
[김성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