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밀번호 경우의 수만 560억"…FBI도 못푸는 아이폰 비밀번호 [이번주 이판결]
입력 2022-04-10 15:12  | 수정 2022-04-10 20:54
한동훈 검사장 [사진 제공 = 연합뉴스]
한동훈 검사장 [사진 제공 = 연합뉴스]

검찰이 22개월에 걸친 이른바 '채널A 검언유착 사건' 수사 끝에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에 대해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2020년 6월 한동훈 검사장의 아이폰11 휴대폰을 확보했지만, 한 검사장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하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아이폰 포렌식과 관련해 "숫자와 문자가 결합된 비밀번호를 해제하려면 설정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라며 "현재 기술력으로는 해제기간조차 가늠할 수 없고, 재차 장기간에 걸쳐 무한정 해제를 시도하는 것은 수사의 상당성 측면에서 적정한 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수사기관이 휴대전화를 확보하고도 수사에 난항을 겪는 경우는 이 밖에도 여러 건 있었다.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손준성 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담당관(검사)도 압수당한 아이폰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아 공수처가 확보한 손 검사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연관된 사례도 있다. 이 전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2년 공무원들에게 직권을 남용해 친형 강제입원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2018년 수사를 받았는데,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경찰이 휴대전화를 확보하고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됐다.
수사기관이 유독 아이폰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애를 먹는 것은 아이폰 보안이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에 비해 강화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잠금을 해제하려면 6자리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숫자와 영어 대·소문자 등을 조합해 비밀번호를 설정한 경우 가능한 경우의 수만 560억개에 달한다. 12초마다 하나씩 입력할 경우 100년 이상 걸린다. 무한정 시도할 수도 없다. 틀린 비밀번호를 5번 넘게 입력하면 1분, 그 다음부터는 한 번 틀릴때마다 5분, 15분, 60분씩 입력 대기시간이 발생하고, 틀린 비밀번호 입력 횟수가 10번이 넘어가면 휴대전화가 영구 비활성화돼 다시는 열어볼 수 없게 된다.

보안을 뚫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보안장비 업체 '셀레브라이트'나 미국 업체 '그레이시프트'의 포렌식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아이폰 비밀번호 해제가 가능하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현재로서 아이폰 암호를 당사자 협조 없이 푸는 방법은 셀레브라이트와 그레이시프트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가격은 기종에 따라 적게는 수천달러에서 많게는 십수만달러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달라스 경찰이 셀레브라이트의 포렌식 기구 1대를 구매하는 데 15만달러(약 1억8400만원)를 지급했다고 한다. 그레이시프트의 포렌식 소프트웨어는 1대당 9000달러(약 1100만원)에서 1만8000달러(약 2200만원) 수준으로 전해졌다. 연간 저작권료(3500~1만5000달러)도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
보안이 한층 강화된 최신 아이폰 기종의 경우 기기를 셀레브라이트 본사로 보내 해제를 의뢰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비용은 대당 2000달러(약 245만원)수준이다.
아이폰 사용자 비중이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의 60%에 육박하는 미국에서는 FBI를 비롯해 최소 2000개 수사기관이 셀레브라이트의 포렌식 기구를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대검찰청은 셀레브라이트의 포렌식 기기를 쓰고 있다. 대검은 2018년 셀레브라이트와 휴대전화 잠금해제와 정보추출 기능이 담긴 소프트웨어를 빌려쓰는 방식의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당시는 한 검사장이 쓰는 아이폰11이 출시되기 전으로, 대검이 계약할 당시에 받은 소프트웨어는 아이폰X(10)까지 사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방법을 통해 수사기관이 아이폰 잠금을 해제할 수 있지만,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해외 사설업체 기술을 빌려야 하는 등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유일하다.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출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자기부죄거부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나 피고인을 대상으로 강압수사를 진행해 진술을 받아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원칙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020년 11월 휴대전화 암호 해제에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이른바 '한동훈 방지법' 제정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변 등 진보단체를 비롯해 여야 모두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출을 강제하는 것은 형사상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거세게 반발해 유야무야됐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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