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文-尹 회동, "집무실이전 예산 따져 협조, MB사면 언급 안해"
입력 2022-03-28 22:38  | 수정 2022-03-29 10:42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간 회동으로 초유의 신구(新舊) 권력간 갈등은 봉합 수순을 밟게 됐다. 대선후 19일만으로 역대 가장 늦었던 회동보다 열흘이나 늦었고 한차례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당초 회동 무산 가능성까지 나올만큼 양측 신경전이 가열됐지만 결국 무산시 짊어져야할 정치적 부담에 양측은 의제 없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의기투합하며 극적인 회동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이날 양측이 코로나 2차 추경, 인사권, 사면권, 청와대 이전 등 민감한 쟁점들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 없이 이철희 정무수석과 장제원 비서실장간 실무협의 채널을 가동해 재논의하기로 한만큼 불씨가 여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댄 것은 지난 2020년 6월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 이후 21개월 만이다. 윤 당선인은 당시 정권과 갈등을 빚던 검찰총장에서 이번에 대통령 당선인으로 문 대통령과 마주앉았다.

이날 윤당선인은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데 대해 문대통령이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청와대 이전 계획은 일단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윤당선인측 관계자는 "윤당선인은 문민 정권 때부터 청와대의 그런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들과 함께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말씀을 했다"며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전을 못했는데 이번만큼은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문대통령은 "집무실 이전은 오롯이 차기 정부의 몫"이라면서도 "예산을 따져서 협조를 하겠다"고 답했다. 당선인측 관계자는 "행안부나 기재부 등 담당 부서에서 한다고 하면 협조하시겠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용산 집무실 이전은 윤당선인이 이전계획을 발표하고 5일만인 지난 21일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열어 제동을 걸면서 양측간 충돌이 전방위 확전으로 이어진바 있다.
윤당선인측은 집무실 이전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이전비용 예비비(496억원)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22일 국무회의에선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청와대는 정부이양기 안보 공백 해소가 선결조건이란 입장인 동시에 용산 이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란 입장도 밝혀왔다.
윤당선인이 회동의 최우선 의제로 강조했던 코로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양측이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장 비서실장은 "구체적 언급은 안됐고 실무적으로 계속 논의하자고 말씀을 나눴다"며 "실무적인 현안 논의는 이철희 정무수석과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당선인은 자영업자 손실보상 등을 포함해 50조원 규모 2차 추경을 추진중이지만 현재 기획재정부가 2차 추경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날 윤당선인이 문대통령의 지원사격을 요청했지만 확답은 못받은 셈이다. 앞서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추경 50조에 대해선 국민께 드린 약속이었고 현 정부도 공감하고 지원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바 있다.
관심을 모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이나 갈등을 빚던 인사권 문제는 이날 회동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윤당선인은 그동안 회동에서 이 전 대통령 사면을 공식 건의할 것이란 입장을 밝혀왔다. 의제 없는 회동인데다 용산 이전 등 현 정부에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윤당선인으로선 이미 의중을 공개한 만큼 굳이 회동 자리에서 대통령 고유권한인 사면을 재론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문대통령도 대선 이후 줄곧 '국민통합'을 강조해왔지만 여전히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반대 여론이 높은데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자극할수 있는 사안이란 점에서 최종 결단이 주목된다. 문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한 사면론과도 얽혀 있다.
공석인 감사원 감사위원을 비롯한 임기말 인사권 역시 그동안 수차례 충돌한 사안인만큼 회동 자리에선 양측 모두 구체적인 언급은 삼간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총재 인사를 두고 한차례 충돌했던 만큼 양측이 또다시 갈등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보문제는 그동안 회동과는 별개로 양측이 적극 협조해온만큼 이날도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한 심도있는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그동안 대북문제에서 입장차를 보여온 양측이지만 북한의 무력시위가 임계치를 넘어선 만큼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규탄하고 북한에 도발 중단을 촉구하는데 공감대를 이뤘다.
문대통령은 대선 3일만인 지난 12일, 북한의 ICBM 도발 다음날인 24일 두차례나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보내 윤당선인에게 안보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장 실장은 "국가의 안보와 관련된 문제를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한치의 누수가 없도록 서로 최선을 다해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번 회동은 역대 가장 늦은 대통령과 당선인간 회동으로 기록되게 됐다. 지난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2012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간 9일만의 회동이 그동안 가장 늦은 회동이었다.
대선 일주일만인 지난 16일 청와대 오찬회동이 예정되며 순조로웠던 양측간 회동은 오찬 4시간을 앞두고 전격 취소되면서 초유의 신구(新舊) 권력간 극심한 힘겨루기가 펼쳐졌다.
한국은행 총재, 감사원 감사위원 등 임기말 문대통령의 인사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발단이었다. 이후 윤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두고도 양측은 대립했다.
우여곡절끝에 첫 회동 예정일에서 12일만인 이날 극적으로 회동이 성사됐다. 감사원이 논란을 빚던 감사위원 제청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양측 인사권 갈등의 실타래가 풀린게 배경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회동이 더이상 지연될 경우 문대통령으로선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윤당선인 역시 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워선 용산 집무실 이전, 2차 추경 등 핵심공약들의 집행이 지연되며 양측 모두 짊어져야할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초 오찬회동은 만찬회동으로 바뀌었고 배석자 없는 독대에서 양측 1명씩 2+2 회동이 됐다. 당초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과 카운터파트였던 이철희 정무수석 대신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임성현 기자 / 김대기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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