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마켓컬리라는 회사를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분들도 많으실테고요. 두 곳 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한화 약 1조원) 규모인 '유니콘 기업'인데요. 쿠팡은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했고, 마켓컬리는 국내 증시 상장을 준비 중입니다. 두 기업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상장 당시, 혹시 상장을 준비하는 현 시점에 영업손실을 기록한 '적자회사'라는 점입니다.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동시에 적자회사라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래도 적자회사라는 말만 들으면 투자를 하기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인데요. 어떻게 적자회사가 증시에 상장하는 게 가능한 걸까요?
적자회사는 어떻게 상장심사를 뚫었을까?
흔히들 기업에 투자할 때는 실적을 봐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적자회사를 피하라는 것도 이 때문이죠. 기업 가치가 높은 회사일수록 상장 이후 실적과 주가가 날개를 다는 경우가 많으니 당연한 분석일 것입니다.
그런데 상장사 중에서는 종종 적자회사인 곳이 눈에 띕니다. 올해만 따져보면 애드바이오텍, 아셈스, 노을 세 곳이 바로 상장 당시 영업손실을 낸 적자회사입니다.
적자회사가 어떻게 상장이 가능했을까요? 국내에서는 전도 유망하지만 당장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기업을 위해 상장 문턱을 조금 낮추고 있습니다. 이른바 '상장특례' 제도라고 부르는데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지난 2005년 가장 먼저 도입된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이 있습니다. 재무제표상 적자가 있더라도 회사가 보유한 기술의 우수성과 성장성이 인정되면 상장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기술 특례로 상장하려면 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기술보증기금, 나이스평가정보, 한국평가데이터 등) 중 2곳에서 A등급과 BBB등급을 받거나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 기업인 경우 한 곳 이상에서 A등급 이상을 증빙받아야 하는데요. 이후 상장위원회를 거쳐 코스닥 시장에 입성하게 됩니다.
2017년 도입된 성장성추천특례상장제도도 상장특례 제도 중 하나입니다.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에게 상장 문턱을 낮춰 주는 것인데요. 자기자본 10억 이상 또는 시가총액 90억원 이상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증권사의 판단 하에 상장심사를 청구합니다. 아무래도 적자회사를 상장하는 일이다 보니 주가 방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장 후 6개월간 환매청구권을 부여합니다. 환매청구권은 다른 말로 풋백옵션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상장 이후 기업 주가가 공모가의 90%를 밑돌 때 공모주를 주관사가 다시 사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성장성특례상장제도와 같은 시기 도입된 '테슬라요건'상장(이익미실현 특례상장)도 있습니다. 미국 전기차 기업은 테슬라에서 이름을 딴 것인데요. 창업 이후 만년 적자였지만 지난 2010년 나스닥 시장 상장 후 성장에 날개를 단 테슬라처럼 '한국판 테슬라'를 육성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입니다. 시가총액이 500억 이상인 기업 중 직전 연도 매출이 30억 이상이면서 2년간 평균 매출증가율 20% 이상 등의 조건에 부합하면 적자기업이라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도입된 유니콘 특례 상장이 있습니다. 미래성장형 기업의 상장 활성화를 위해 상장요건을 개선한 것입니다.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에 한해 외부 전문평가기관 한 곳에서만 기술성 평가 A등급을 받으면 코스닥 상장예심 청구자격을 부여합니다.
상장문 통과한 적자회사의 현실...투자 유의점은?
적자회사들은 상장 문턱을 가까스로 넘더라도 기본적으로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영업이익을 낼 수 없는 고위험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경우 어떤 밸류에이션을 산정해도 고평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 당국에서는 기업이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상장을 통해 자금 유치 등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투자자 보호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한 도전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적자회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투자자들에게 외면받기 쉽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특례 요건에 맞추더라도 시장 반응에 따라 상장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요.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 '대어'로 기대를 모았던 국내 바이오 기업 보로노이도 수요예측 실패로 코스닥 상장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보로노이는 기술수출을 4건이나 해낸 유망한 기업이지만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서 기대했던 공모가를 받지 못하면서 남은 상장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그렇다면 적자회사에 투자할 때는 무엇을 살펴봐야 할까요. 핵심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실적 성장성입니다. 특례 상장제도를 통해 상장 문턱을 낮춘 것은 그만큼 기업의 기술성과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신이 투자할 기업의 기술성과 시장의 성장성, 기업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흑자전환 가능 시기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입니다. 현재는 적자지만 목표로 한 시기에 흑자전환에 성공한다면 성장성이 높은 기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면역세포치료제 연구개발 기업 바이젠셀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지난해 8월 기술특례 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서 입성했는데요. 상장 첫날 장중 최고가(7만8000원)을 기록했으나 이후 주가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 공모가 5만2700원이었던 바이젠셀은 전날 종가(2만7500원) 거의 반토막이 났습니다. 파이프라인, 인력 확대 등에 따른 비용 증가로 영업적자 규모가 전년대비 66% 증가한 상황입니다.
똑같은 적자회사로 상장했지만 인공지능(AI)기업 마인즈랩의 상황은 다릅니다. 이달 들어 주가가 40% 넘게 상승하며 공모가(3만원) 회복을 앞두고 있는데요. 메타버스 시장 확대로 인공인간(AI HUMAN) 활용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돼 증시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에서는 마인즈랩의 AI 가상 은행원 기능이 탑재된 데스크형 스마트 기기인 디지털 데스크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200대를 공급했으며 올해 추가로 300대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똑같은 적자회사지만 해외에서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증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테슬라가 그러했고, 국내 기업 중에서는 쿠팡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상장 직전까지 매년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며 국내에서는 '만성 적자회사'라는 불명예를 안고 미국으로 향했는데요. 지난해 3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화려하게 데뷔하며 미국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공모가는 당초 목표 밴드였던 주당 32달러~34달러를 웃도는 35달러로 정해졌고, 상장 첫날(지난해 3월11일) 공모가(35달러)보다 약 2배 높은 69달러까지 주가가 치솟기도 했습니다. 당시 100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는데, 이는 국내 시총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번 달에는 이커머스 플랫폼 빅(BIG) 3 중 하나인 마켓컬리가 상장의 첫 발을 뗍니다. 이달 말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계획인데요. 기업공개까지 4개월 가량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르면 올해 3분기 상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첫 이커머스 기업이라는 점에서 쿠팡과 마찬가지로 '상장 대박'을 이룰 지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현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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