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엔화당 원화값 세자릿수 눈앞…"수출경쟁 밀릴라" 韓기업 긴장
입력 2022-03-23 17:22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던 엔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며 엔화(100엔) 대비 원화값도 3년 만에 9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은행(BOJ)이 경기 부양을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엔저' 현상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산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이날 100엔당 원화값은 장중 1000.12원을 기록했다. 엔화 대비 원화값은 2019년 3월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화당 원화값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일시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인 뒤 지난 18일부터 빠르게 반등했다.
엔화 약세의 가장 큰 요인은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에 나서고 있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일본은행이 양적 완화 정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기로 했다.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도 0%로 유지하기 위해 장기 국채를 상한 없이 매입한다고 밝혔다. 이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50bp(1bp는 0.01%포인트)까지 인상할 수 있다며 긴축을 준비하는 것과 대조된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차장은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공식화한 이후 미국과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며 "각국 금리는 환율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엔화가 외환시장에서 약세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원유·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일본의 경상·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는 점도 엔저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 1월 경상수지는 1조1887억엔 적자로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월 일본 무역수지도 6683억엔 적자를 나타내며 7개월 연속으로 적자를 이어갔다.
일본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도모했지만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아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미즈호은행 관계자는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한 데다 코로나19로 해외 관광객 유입도 어려운 상태여서 엔화 약세의 장점을 보기 힘든 상황인 데 비해 수입물가는 눈에 띄게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 초기에 엔화가 약세 현상을 보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2004년과 2015년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 초기 국면에 엔화가 약세를 보였다"며 "엔화가 안전자산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엔화가 원화값보다 더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나라 수출 기업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며 달러 대비 대다수 국가 통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엔화가 원화보다 더 크게 약세를 보이면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도 엔화 약세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 기업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국내 자동차, 조선, 전자산업 관련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엔저로 인해 높아진 수익성을 광고비 등 판촉 비용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일본 자동차 업체와 전 세계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 업체는 환차익을 앞세운 일본의 판촉 물량 공세에 고전할 우려가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계 차량 브랜드가 점령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에 최근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공장을 준공하며 공략 실마리를 쥐려던 찰나에 일본계 브랜드가 환차익을 앞세워 저가 공세를 한다면 현대차의 시장 초기 진입을 방어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도쿄 = 김규식 특파원 / 서울 = 서진우 기자 / 김유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