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지하철역 광고의 관리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서울교통공사가 사실상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23일 인권위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서울교통공사 광고관리규정' 중 '체크리스트 평가표'를 개정하라는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지난 1월 20일 일부 항목을 개정 중이라고 회신했다.
기존 체크리스트 항목 중 '의견이 대립하여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광고주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항목을 삭제하고, '소송 등 분쟁과 관련 있는 사안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가', '공사의 중립성 및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가' 항목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인권위는 이같은 서울교통공사의 대응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더욱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신설하려는 항목이 ▲공사의 내부 광고규정 제7조와 제29조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고 ▲공사의 광고자율심의 규정보다도 좁게 해석돼 광고 내용과 상관 없이 소송과 관련된 사안의 게재 자체가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는 "광고는 소송 등 분쟁이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한 일방적 주장이나 설명으로 소송에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광고자율심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 새로 신설되는 광고규정 항목은 소송과 연관돼 있다면 그 영향력과 무관하게 게재를 금지할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더 협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인권위는 '의견이 대립하여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를 삭제하거나 관련 항목을 구체적으로 개정해 광고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광고는 게재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은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고(故) 변희수 하사를 지지하는 지하철역 광고가 지난해 8월과 9월 두 차례 '불승인' 결정을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광고는 3차 심의요청 끝에 지난달 게재됐다.
인권위의 지적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측은 "인권위의 권고 사항을 수용해, 광고관리규정 체크리스트에 신설하겠다고 회신했던 두 항목 역시 신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인권위의 권고사항과 관련된 점검항목을 가능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비해 신속히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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