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오번 지역. 광활한 옥수수밭 사이로 차세대 전력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 카바이드(SiC, 탄화규소) 웨이퍼'를 생산하는 SK실트론CSS 공장이 위치해 있다. SiC 웨이퍼는 기존 실리콘 웨이퍼보다 뛰어난 전력효율과 내구성 덕분에 전기차, 5G네트워크에 활발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SiC 기반 반도체를 탑재한 전기차는 일반 실리콘소재 반도체장착 차량보다 7.5% 늘어난 주행거리와 75% 향상된 고속충전 기능을 보여준다.
SK실트론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글로벌 스토리' 경영전략에 따라 2020년 2월 듀폰 웨이퍼 사업부를 4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미국 현지 자회사인 SK실트론CSS에 이전했다. 기술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에 SiC 웨이퍼 제조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SK실트론CSS는 미국 울프스피드와 투식스에 이어 세계 3대 생산업체로 손꼽힌다.
16일(현지시간) SK실트론CSS 오번 공장에 들어서자,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 방침에 따라 까다로운 보안검색부터 거쳐야 했다. 그리고 SiC 웨이퍼 제조를 위한 거대한 장비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본집약적인 산업이다보니 공정은 모두 자동화됐다. 처음에 SiC 파우더를 도가니에 넣어 고온·저압 증착 작업을 통해 덩어리같은 잉곳을 만들고, 얇게 잘라서 낱장으로 가공한다. 이어 평탄화와 세정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박막화 작업까지 진행된다. 가급적 짧은 기간 내에 가장 많은 웨이퍼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느냐가 기술력을 좌우한다.
SK실트론CSS 주요 제품은 100㎜(4인치)와 150㎜(6인치) SiC 웨이퍼이다. 추가로 200㎜(8인치) SiC 웨이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iC 웨이퍼 한 장을 잘게 쪼개면 전기차 5~6대에 들어가는 다양한 용도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SK실트론CSS는 오번 공장에서 차량으로 10분거리의 베이시티에 2025년까지 3억달러를 추가 투입해서 신공장도 짓는 중이다. SiC 웨이퍼 생산량을 오번공장보다 최대 4배로 증설하는 공격적 투자이다. 올해 하반기 부분가동을 시작한다. 베이시티 신규 공장 설비가 완전히 만들어지면 200명 이상 인력도 현지에서 신규 채용할 예정이다. 이로써 SK실트론CSS는 전력반도체 소재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면서 미국 북부 낙후된 '러스트 벨트'에서의 전기차 부흥을 이끄는 핵심 공급망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또한 SiC분야 글로벌 2위 업체로의 도약도 기대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하반기 베이시티 신공장 일부분 준공식에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 최 회장은 외국에서 현지 이해관계자들의 공감을 얻는 윈-윈형 친환경 사업모델 구축을 독려하는 글로벌 스토리 경영을 펼치고 있다.
에드워드 산체스 SK실트론CSS 부사장은 "지난 20년간 오번 SiC웨이퍼 사업장에서 일하는 동안 회사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SK에 인수된 이후 회사가 급성장하는 모습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SK실트론CSS는 시장 성장성을 보고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정비 부담이 많아졌고 당장에는 수익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장용호 SK실트론 사장은 "SK실트론CSS 기업가치가 높은 데다 (사전 수주한 계약을 감안할 때) 내년에는 흑자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한국 기업이 미국 회사를 인수해서 알맹이만 빼가는 게 아니라 재투자하고 있어서 미국 정부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SK실트론CSS 기술은 한국의 전력반도체 연구개발에도 힘을 보탠다.
SK 관계자는 "SK실트론CSS와 SiC 웨이퍼 생산 협력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구미공장에서도 SiC 웨이퍼를 양산한다"며 "우리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글로벌 수준의 차세대 전력반도체 개발 및 생태계 조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실트론은 전날 본사가 위치한 구미국가산업단지에 3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 통상장관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건주 SK실트론CSS 오번 공장을 둘러보고 SK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워싱턴특파원 공동취재단]
이날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SK실트론CSS 오번 공장을 함께 둘러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0주년을 맞아 미국 무역대표부 제안에 따라 양국 통상장관이 반도체 협력의 상징인 한국 기업현장을 이례적으로 찾은 것이다.타이 대표는 "SK실트론CSS는 한미 파트너십의 좋은 사례"라며 "미국 시민들의 혁신과 재능을 활용해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창출하고 좋은 급여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치켜세웠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SK실트론 투자에 대해 △한미 공급망 협력 성공사례 △미시간주 자동차산업 발전 필수요소 △한미FTA를 통한 양국 협력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타이 대표가 LG와 SK간 배터리 분쟁을 성공적으로 중재해서 결과적으로 수 천개의 질좋은 일자리를 살리고 배터리 공급망을 안정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SK그룹 대표로 유정준 SK E&S 부회장도 동행했다.
유 부회장은 "SK그룹이 차세대 기술에 대한 선도적인 미국 투자자로서 자랑스럽다"며 "친환경 에너지와 같은 최고의 기술투자에 초점을 둘 예정이고 지난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전기차 충전서비스 업체 인수도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SK그룹은 매출액이나 수익목표를 제시하지 않는 대신에 미국내 그린 비즈니스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1억t 감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번·베이시티(미시건주) = 강계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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