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TV 채널의 기자가 자사의 뉴스 방송에 납입해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시위를 펼쳤다.
14일(현지시간) 영국 언론 ITV 등 외신은 이날밤 방송된 러시아 국영TV 채널1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반전 시위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난입했다고 보도했다.
영어와 러시아어로 쓰여진 피켓에는 "전쟁 반대(No War)"라는 구호가 영어로 적혀 있다. 또 "전쟁을 멈춰라, 선전을 믿지 마라, 그들은 여기에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이라는 단어는 다시 영어로 적혔다.
이 시위자는 뉴스 앵커가 계속해서 뉴스를 전하자 "전쟁을 멈춰라. 전쟁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 시위자의 모습은 몇초간 방송에 노출됐고 이후 제작진이 다른 뉴스로 화면을 전환하면서 사라지게 됐다.
채널 1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국영 방송으로, 시위자가 난입한 뉴스 프로그램은 매일 수백만명의 러시아인이 시청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국영방송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파'를 보호하고, 러시아인에 대한 학살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는 보도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사건 이후 해당 방송국은 "뉴스와 관련이 없는 여성이 방송에 등장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부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는 짧은 입장을 내놓았다.
러시아의 야당 지도자로서 현재 수감 상태인 알렉세이 나바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시는 트위터를 통해 "저 여자 멋지다"라며 이 영상을 공유했다. 이 영상은 18만회 이상 조회됐다.
ITV는 이 시위자가 이 방송국에서 일하는 마리나 오브시아니코바 기자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오브시아니코바 기자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는 러시아 출신이다.
오브시아니코바 기자는 시위에 앞서 자신의 SNS에 사전 녹화된 영상을 올렸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지난 몇년 동안 채널 1과 크렘린 선전에 힘썼다. TV 뉴스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부끄럽다"라며 "우리는 이 반인륜적인 정권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온 세상이 우리를 외면하고 있다. 다음 세대는 이 동족상잔의 수치를 씻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오브시아니코바 기자는 모스크바의 한 경찰서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ITV는 "러시아 국영 언론사 직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녀의 발언은 러시아가 가짜 뉴스의 확산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을 도입한 후 나온 것으로, 이는 오브시아니코바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고득관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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