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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구글 대신 여기 투자했다면"…S&P500 수익률 1위, 어떤 기업이길래?
입력 2022-03-14 17:10  | 수정 2022-03-15 08:54
◆ 서학개미 투자 길잡이 ◆
'생존을 위한 인수·합병(M&A).'
코로나19가 촉발한 국제유가 급락으로 미국 셰일업체들의 도산이 이어지던 2020년. 북미 E&P(석유·가스 개발) 업계에서 일간 생산량 기준 10위에 해당하던 데번에너지는 같은 해 9월 동종 업계의 WPX에너지를 25억6000만달러(약 3조원)에 M&A했다. 이를 통해 데번에너지는 업계 8위로 뛰어올랐다. 업계 내 대형 M&A였지만,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사업 확대보다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더 큰 M&A였기 때문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합병을 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1년 만에 상황은 반전됐다. 경기 회복 기대감에 유가가 회복세를 보인 데다 생산량 증가 등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서다. 지난해 데번에너지의 매출은 전년 대비 153%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대규모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주가도 지난해(2021년 1월 4일~올해 1월 3일) 기준 182.5% 폭등해 미국 S&P500지수 종목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좋았다. 부활에 성공한 것이다.
1971년 설립돼 1988년 미국 증시에 데뷔한 데번에너지는 현재 미국 5대 셰일 업체 중 하나로 꼽힌다. 북미 지역을 주 무대로 석유·천연가스 업계의 수직 계열상 업스트림(상류 부문)에 해당하는 탐사와 개발·생산 부문의 사업 비중이 큰 회사다.
1989년 천연가스 생산 부문에 진출한 데번에너지는 활발한 M&A를 통해 북미 지역의 석유·가스 자산을 확보하는 한편 브라질·아제르바이잔 등에 보유하고 있던 수익성이 낮은 해외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북미 육상 지역에 집중하는 전략을 펴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8년까지 데번에너지가 M&A한 에너지 기업만 12개에 이른다.
데번에너지가 단행한 M&A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2002년 텍사스의 중소 석유 업체 '미첼에너지'와의 합병이다. '셰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미첼이 세운 미첼에너지는 1998년 물과 모래, 약품 등이 섞인 액체를 고압으로 분석해 셰일층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공법인 '수압파쇄법'을 개발한 업체다. 31억달러를 들여 미첼에너지를 합병한 데번에너지는 수평으로 넓게 퍼져 있는 셰일층에 대한 시추를 가능하게 하는 '수평 시추 기술'을 수압파쇄법과 접목했다. 이 방법으로 2003년 데번에너지는 텍사스 북부의 '바넷 셰일' 지역에서 대규모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하며 셰일혁명의 막을 올렸다. 2008년 미국에서 셰일 오일·가스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됐고, 데번에너지는 2014년 사상 최대 매출(206억3800만달러)을 기록했다.
[로이터 = 연합뉴스]
그러나 2015년부터 이어진 저유가 현상과 2020년 4월 '마이너스 유가' 사태를 불러온 코로나19 여파로 데번에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2020년 매출액은 약 48억2800만달러로 2014년 대비 약 76% 급감했으며, 영업손실은 28억5400만달러에 달해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다. 2014년 말 60달러대였던 주가는 2020년 말 15달러 수준으로 급락했고,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3월에는 6달러까지 추락했다.
위기에 내몰린 데번에너지를 기사회생시킨 것도 유가였다. 지난해 초 배럴당 50달러를 밑돌았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며 WTI 가격은 지난 11일 기준 109.33달러까지 급등했다.
WPX에너지와의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도 실적 개선에 한몫했다. 합병을 통해 데번에너지는 델라웨어 분지와 윌리스턴 분지에서 신규 유정을 확보했고, 이는 생산량 증가로 이어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자료에 따르면 데번에너지의 일일 석유·천연가스 생산량은 2020년 33만3000BOE(석유환산배럴)에서 지난해 57만2000BOE로 72% 늘었다. 특히 지난해 일일 생산량 가운데 40%가 WPX에너지가 보유한 유정에서 나왔다. 지난해 말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데번에너지 주가 상승의 이유로 '유가 상승'과 함께 '합병에 따른 효율'을 꼽았다.
최근 고유가 흐름은 전망도 밝게 하고 있다.

연초부터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둔화와 공급 부족 등의 여파로 유가가 상승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에 더해 최근 영국과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금지에 나서면서 공급 충격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가 배럴당 135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최악의 경우 175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길이 막히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고유가 흐름과 전망을 반영하듯 데번에너지의 주가는 올해 들어 28%가량 오르며 월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팁랭크스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데번에너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월가 애널리스트 19명 중 14명이 매수 의견을 냈다. 중립 의견이 5명으로, 매도 의견을 제시한 분석가는 한 명도 없었다. 또 CNN머니가 최근 애널리스트 3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63%에 해당하는 21명이 매수 의견을 제시했다.
올해 생산량 증가를 최소화하고 현금 확보를 통한 주주 환원에 집중하겠다는 방침도 주가에는 호재가 될 전망이다. 데번에너지는 올해 원유 생산량을 하루 57만~60만배럴로 유지하기로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같은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5% 미만 증가한 것이다. 완만한 생산량 증가폭을 고수하며 늘어나는 현금 흐름으로 배당 확대 등 주주가치 제고에 집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15일 연말 실적 발표에서 릭 먼크리프 데번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물량 추구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규율을 극도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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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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