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 모씨(27)는 주말을 맞아 A사의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족과 함께 먹을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그는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배달 기사의 전화 두 통을 놓쳤고, 이 씨의 음식은 바로 폐기됐다. 이 씨가 고객센터에 억울함을 호소하자 돌아온 것은 "전화를 두 번 받지 못한 고객의 책임이며 환불도 불가하다"는 통보였다. 이 씨는 "배달 기사가 1분 동안 연달아 전화를 걸어놓고 못 받으니 자기가 음식을 처리하겠다며 가져갔다"며 "예상 시간보다 일찍 와선 5분도 기다리지 않고 환불도 안 된다는 건 정말 너무하다"고 토로했다.
배달이 한국 사회의 주류 문화로 부상하며 배달 업체의 횡포에 소비자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배달원을 향한 갑질이 문제시됐다면 지금은 소비자의 피해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위 사례의 이모씨는 결국 환불을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 식사 시간까지 엉망이 됐다. 실제로 A사 고객센터에 따르면 일선 고객센터에는 2회 이상 전화를 받지 않으면 음식을 자체 폐기하고 환불도 거부하라는 지침이 있다. 지난달에는 배달 음식에서 이물질을 발견해 신고한 소비자가 업주에게 역고소를 당해 아이를 유산했다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기사 사이에서는 기사가 배달 음식 처분권을 갖게 되는 '자체 폐기' 결정을 유도해 배달하던 음식을 본인이 갖는 꼼수도 등장했다. 결제하려던 고객이 카드가 없다고 하거나 배달 중 사고가 났다고 허위보고하여 자체 폐기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한 배달 기사 커뮤니티에는 "고객이 신용카드가 없다고 허위보고해 배달음식을 받았다", "나라면 자체 폐기로 몰아서 소맥 안주를 했을 것"이라는 자체 폐기 관련 게시글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8일 쿠팡이츠는 배달 기사들의 부정 사례가 적발됐다며 "고의적으로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배달 기사에게는 활동 제한과 법적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경고성 공지를 공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배달 문화가 빠르게 정착했지만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황진주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배달앱 시장은 독과점 시장이기 때문에 사업자 위주의 정책으로 소비자 피해가 크다"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주권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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