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항거불능'을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죄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준강간과 준강제추행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된 A씨가 형법 299조가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헌재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항거불능 상태가 무엇인지 예측하기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형법 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혹은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나 추행을 한 자를 준강간과 준강제추행죄로 처벌하는 조항으로 처벌은 강간죄(3년 이상 징역), 강제추행죄(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와 동일하다. A씨는 '항거불능'의 의미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것이 형법 299조의 목적이라고 전제하며 "항거불능의 상태란 가해자가 성적인 침해 행위를 함에 있어 별다른 유형력의 행사가 불필요할 정도로 피해자의 판단·대응·조절 능력이 결여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항거불능 상태는 형법 문언상 '심신상실'에 준해 해석돼야 한다"며 "정신장애나 의식장애 때문에 성적 행위에 관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상태와 동등하게 평가 가능한 정도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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