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창립 53년 만에 첫 파업 기로에 놓였다. 회사와 임금협상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노조가 지난주부터 쟁의행위 준비에 돌입하면서다.
파업이 현실화되면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큰 피해가 불가피해진다. 과거 사례를 비춰봤을 때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선 반도체 공장이 멈추는 극단적인 상황은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아직 노사 간의 협상 가능성이 남아있는 데다 파업까지 간다해도 대체 인력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 "연봉 1000만원 올려달라"…쟁위 수순 돌입
7일 삼성전자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에 따르면 지난 4일 노조는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노조가 조정신청을 접수함에 따라 중노위는 조정신청이 있는 날부터 10일간 조정기간을 가지게 됐다. 해당 기간 내에는 2~3회의 사전조정을 실시한다.
조정안을 노사가 받아들인다면 다행이지만 한쪽이라도 거부하면 노조는 파업 등 쟁의 행위에 들어갈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다. 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거쳐 쟁의권을 발동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달 중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 노조가 실제 파업을 결정할 경우 삼성전자 창사 53년 만에 첫 파업이 발생하게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5월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2021년도 임금교섭을 15회에 걸쳐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 측은 전 직원 연봉 1000만원 일괄 인상, 매년 영업이익의 25%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지난해 3월 임직원 대표로 구성된 노사협의회 협상에서 정한 기존 임금인상분 외에 추가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삼성전자가 작년 3월 사내 자율기구인 노사협의회와 협상을 통해 발표한 임금 인상 폭은 기본인상률 4.5%에 성과인상률 3%를 합한 총 7.5%다. 노조는 회사가 제시한 임금협상 최종안을 조합원 투표에 부쳤지만 90.7%의 반대로 부결됐다.
◆ 1초만 멈춰도 천만학적 금액 손실
만약 실제 파업으로 이어진다면 삼성전자 생산라인에는 큰 영향이 미칠 수 있다.
현재 노조 조합원은 4500여명 수준으로 전체 직원 11만명 중 4%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특히 노조에 가입된 직원 절반 정도가 기흥캠퍼스 등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업 시 반도체 공장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사진 제공 =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가동돼야 한다. 공정 특성상 한 번 멈추면 재가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단 1초라도 멈추면 작업 중 미세한 오차가 발생해 제작하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전량 폐기해야 한다. 곧바로 재가동해도 정상 수준의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 비율)을 위해 세팅해 놓은 수치들을 재조정해야 한다. 이는 천문학적 금액 손실로 이어진다.반도체 생산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가 됐다고 하지만 설비 오류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줘야 하는 만큼 기본적인 상시 인력이 필수로 유지돼야 한다.
실제 지난 2019년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은 28분간 정전으로 5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봤다. 2020년 1월에는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1분가량 전력공급이 중단돼 수십업원의 손해를 입기도 했다.
◆ 파업하더라도 대체 인력 충분...가능성 적어
노조는 파업 시 반도체 공장이 멈출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파업까지 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이유는 파업 인원이 제한적으로 대체 인력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실상 사회·경제적 '봉쇄'에 가까운 거리두가 3단계가 처음 발령됐을 당시에도 반도체 공장은 차질없이 가동돼왔다.
또 파업으로 설령 피해를 입게되면 직원들의 성과급 및 인센티브 불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노조도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국가 주요 산업이다 보니 정부 개입 가능성도 있다.
노사 간의 마지막 극적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는 1987년 노조가 설립했지만 창립 후 단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1년 유동성 위기 때는 임금 유예, 복지제도 폐지 등에 합의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전 직원 대상 순환 무급휴직 시행부터 휴일 및 시간외 근무수당 반납에도 동의한 바 있다.
[김승한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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