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빼줘요"…불만 커지는 '갱신계약 중도 해지'
입력 2022-02-07 11:18  | 수정 2022-02-07 16:28

"집주인은 듣는둥 마는 둥입니다. 소송을 하자니 전세 계약금이 묶이고, 집을 빼고 나갈 길은 막막하고. 조정 사례가 있으면 뭐합니까. 다른 나라 이야기 같아요."
지난해 5%를 증액해 전세 계약을 갱신한 A씨는 급작스런 인사 발령에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사정에 놓여 있었다. 집주인에게 상황 설명을 했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두고 나가라는 말만 돌아왔다. 갱신 청구권을 사용한 임대차 계약이면 3개월 전에만 통보하면 집을 비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전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주택임대차 분쟁조정 사례집을 발간하며 임대차법 시장 안착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 적용에 시장 참여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 세입자가 언제든 계약을 중도 해지 할 수 있다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는 묵시적 갱신에만 적용되던 규정이 임대차법 개정으로 갱신 계약에까지 확대 적용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 규정을 이용하면 세입자가 사정이 생겨 이사를 나갈 경우 집주인에게 3개월 전까지만 통보하면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공인중개사 중개보수 등도 부담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지만 임대인 입장에선 손해가 생길 수밖에 없고, 세입자들도 현실적으로 권리를 챙기기가 쉽지 않아 앞으로도 분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임차인의 계약해지를 방해하는 경우 딱히 방법이 없다. 임차인은 보증금을 받기 위해 임대차 관련 분쟁 조정이나 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분쟁조정은 사실상 효력이 없고, 소송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상대적으로 임대인에게 유리하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아 이사갈 집의 매매나 전세 자금으로 조달해야 하는 세입자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수도권 B공인중개사 대표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가라는 식의 대응을 하는데, 임대차법 이후 못 올렸던 보증금까지 대거 올려버리면서 다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을 맞은 세입자들이 다수 있었다"며 "집주인들도 세입자가 계약 기간을 못채워 나가는데 중개보수까지 책임져야한다는 데 대해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주려 노력은 하는데 임대차법 이후 집주인과 세입자들간 감정의 골이 깊은터라 끝이 안좋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의 조정 사례집에 등장하는 계약갱신 관련 손해배상액 역시 논란이다. 임대인 C씨는 실거주를 하겠다고 갱신계약을 요구하는 세입자를 내보냈으나 이후 부동산에 주택이 임대 매물로 올라왔다. 명백히 임대인의 위법 행위이지만 이사비와 에어컨 이전 설치비용,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부담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실거주 의사가 없던 임대인 D씨 역시 세입자를 내보냈지만 실거주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주택 매도 계획을 수차례 밝혀온데다 물건 소재지가 임대인의 생활 권역도 아니었다. 의심을 품은 세입자가 조정을 신청했고, 그 과정에서 임대인의 실거주 의사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확인이 됐지만 세입자가 받아간 것은 이사비 명목으로 지급된 350만원이 전부였다.
온라인 부동산 카페와 단체 채팅방 등에서는 "이럴 거면 세입자를 속이는게 훨씬 유리한 게 된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실제 부동산 시장에서는 세입자가 있어 즉시 입주가 안되는 물건은 수 천 만원씩 낮게 매매 시세가 형성돼 있다. 임대차법 도입 이후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내면서 1000만원이 넘는 위로금을 쥐어 주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금이라도 임대차법을 되돌려 시장을 정상화 시켜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최근 대선후보 방송토론에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우선 정책 방향을 두고 임대차3법 폐지를 꼽으면서 시장의 관심도 높아진 상태다.
국민의힘에서 부동산공시가격센터장을 맡고 있는 유경준 의원은 "정부 초기에 기립입법으로 준비가 안된 임대차3법을 강행해 시장을 교란하고 국민들을 불신에 빠뜨렸다"며 "임대차3법과 종부세 상향 등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관련 입법은 가능한 빨리 원위치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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