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인허가데이터 125만 건 분석
지난해 폐업 음식점, 코로나19 이전 대비 5천 곳 감소
25년 이상 운영 장수 음식점의 폐업률 급증
지방, 농촌 지역의 장수 음식점 폐업 두드러져
누구에게나 그런 식당이 하나쯤 있을 겁니다. 익숙한 골목을 찾아 들어가면 마치 한 폭의 배경화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식당. 음식을 내오시는 아주머니도, 음식을 담는 그릇도, 한 숟가락 크게 푸는 흰 쌀밥도 언제나 그랬듯이 한결같은 그런 골목 식당 말입니다.지난해 폐업 음식점, 코로나19 이전 대비 5천 곳 감소
25년 이상 운영 장수 음식점의 폐업률 급증
지방, 농촌 지역의 장수 음식점 폐업 두드러져
서울 천호역 근처의 OO해물탕은 그런 식당이었습니다. 먹자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지 30년은 넘었다곤 하는데…. 정확히 언제 문을 열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식당입니다. 학창시절 입던 교복이 군복을 거쳐 양복으로, 콜라와 사이다는 소맥으로 바뀌는 시간 동안, 별일 아니라는 듯이 동네를 지켜온 해물탕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앞에서는 장사가 없더군요. 얼마 전 당연하다는 듯이 그 해물탕집을 찾았지만, 가게는 거짓말처럼 텅 비어있었습니다. 폐업했다는 단출한 메모만 남기고요.
사실 뭐 이 해물탕집만 그런가요? 50~60년 된 노포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흉흉하게 들려옵니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등장한다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경양식집 역시 얼마 전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지독했던 전쟁과 가난도 이겨냈던 식당들이 코로나19 앞에서는 결국 백기를 들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폐업 줄었다고?
그런데 얼마 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오히려 자영업 폐업이 감소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도저히 못 살겠다는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매일 같이 터져 나오는데, 사실일까요? MBN 데이터취재팀이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중 일반 음식점 데이터 약 125만 건을 분석해 알아봤습니다.
기존 보도대로 폐업은 확실히 줄었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8년과 2019년에는 한 해 6만 곳에 가까운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는데요. 2020년과 2021년은 각각 5만 5천 곳 안팎으로 줄었습니다. 폐업 음식점 수를 설립 음식점 수로 나눈 폐업률도 2018년 93.4%에서 2020년 82.6%, 2021년 83.7%로 10%p 가량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폐업 감소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호프집을 열었다가 현재 폐업 직전에 몰려있는 한 자영업자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철거 비용 등 폐업에 필요한 돈을 또 어디서 구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폐업을 결정할 경우 정부 지원금이 끊기고, 창업 대출도 일시 상환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폐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MBN종합뉴스 캡쳐
#골목 터줏대감이 먼저 무너진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 더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를 조금 더 살펴볼텐데요. 아래 그래프는 지난 5년 간 전국의 음식점 폐업 건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2020년과 2021년 확실하게 줄어들었죠? 이 중에서, 설립에서 폐업까지 25년 이상 걸린 ‘장수 음식점들만 골라내 보겠습니다.
전체 폐업 수와는 반대로 매년 늘어나고 있죠. 특히 지난해 폐업 수가 급증했는데요. 전체 음식점 폐업 중 장수음식점 폐업의 비율은 지난해 6.2%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골목의 터줏대감들이 다른 곳들보다 더 빠르게 골목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겁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회장을 역임한 민상헌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대 공동대표는 비교적 음식점 운영 경험이 풍부하고, 자금 상황이 괜찮은 장수 음식점들이, 앞으로의 상황을 비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장수 음식점들의 폐업 수치가 외식업계에서 일종의 선행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죠. 때문에, 장수 음식점들이 폐업 급증이 조만간 음식점 전체의 줄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인구절벽, 이중고 겪는 지방 상권
지역별로는 어땠을까요? 전국 230개 지자체의 2021년 장수음식점 폐업 비율(장수음식점 폐업 / 전체 음식점 폐업)을 지도로 시각화했습니다.
전국 장수 음식점 폐업 지도
색이 진할수록 폐업 비율이 높다는 뜻인데요. 한눈에 봐도 수도권 보다는 지방이, 대도시보다는 농촌의 장수음식점 폐업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상북도 청송군의 경우 지난해 음식점 폐업 중 무려 절반이 장수음식점 폐업이었고요. 청송군을 포함한 장수음식점 폐업비율 상위 10개 지역 역시 부산 동구를 제외하면 전부 농촌이었습니다.
이곳 농촌 지역에서는 코로나19에 인구 유출로 인한 상권 붕괴까지 겹치며 더욱 빠르게 장수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겁니다. 광역 지자체별로는 전라북도(13.0%)와 경상북도(11.7%), 충청북도(10.1%)의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여러분의 골목 식당은 안녕한지요? 코로나 2년, 계속되는 방역 조치와 거리두기에 손님도 식당도 모두 지쳐갑니다. 익숙한 골목 사이에서 오랜 친구 같은 식당을 마주칠 때면, 이제 반가움보다는 '아직 살아남았구나'라는 안도감과 '이곳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막연한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 우리 골목의 풍경은 얼마나 바뀌게 될까요. ‘그때 그 곳이 더 낯설어지기 전에 잔인한 시간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랍니다.
[민경영 데이터전문 기자 busines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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