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증시에서 셀트리온처럼 투자자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기업도 드물다. 바이오 시밀러 사업을 선도하는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보는 투자자가 있는 반면 대규모 분식회계를 통해 투자자들을 속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셀트리온이 다시 분식회계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금융위 산하 회계 전문 기구인 감리위원회에서 셀트리온의 분식회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감리위원회는 위원들이 누구인지조차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삼엄한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어 셀트리온의 회계 처리 중 어떤 부분이 왜 문제가 되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최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온 셀트리온 분식회계 논란과 관련된 쟁점들을 알아본다.
다른 바이오기업도 많은데…왜 셀트리온만 이러나
2008년 셀트리온이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할 때부터 분식회계 논란은 꼬리표처럼 이 회사를 따라다녔다. 다른 바이오기업도 많은데 왜 유독 셀트리온만 문제가 될까.
이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애매모호한 관계 탓이다.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 셀트리온헬스케어 3사가 현재 상장돼있는데 셀트리온은 셀트리온제약 지분 54.93%를 보유하고 있어 셀트리온제약에 대해서는 큰 잡음이 없다. 문제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관계다. 셀트리온이 바이오 의약품을 제조해서 셀트리온헬스케어에 판매하면,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이를 유통 판매한다. 제품 생산은 셀트리온, 유통은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맡는다. 통상 한 회사가 생산과 유통을 함께 하지만 이를 두 회사로 분리시킨 것이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서정진 명예회장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지분 관계는 없다. 즉 한 사람이 운영하는 두 개의 회사 같은 구조다. 식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가 분식회계설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쟁점1 - 국내 판권 매각 대금은 '매출'일까 '영업외수익'일까
지난 2018년 6월 22일 셀트리온은 짧은 공시를 하나 올린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해외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셀트리온에 218억원을 받고 국내판매권을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회계처리의 적절성을 지적하면서 문제가 공론화됐다.
매출이라는 것은 회사의 고유한 사업 활동에 따라 반복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만큼 판권 판매에 따른 일시적인 이익은 당연히 영업외 수익으로 처리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국내판권 매각 대금 218억원을 매출로 잡았다. 2분기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영업이익은 152억원으로, 국내판권 매각이 없었다면 영업적자가 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셀트리온헬스케어는 국내판권을 0원에 인수했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실적 방어를 위해 셀트리온의 현금을 동원한 것 아니냐고 의심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약품을 유통하는 회사에서 판권을 사고 파는 행위가 영업활동과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독점 판매권을 해외 유통사에 양도해 사용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영업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회사측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쟁점2. 창고에 쌓인 의약품의 유통기한이 임박했다면 회계 처리는 어떻게?
셀트리온이 바이오 의약품을 셀트리온헬스케어에 판매하면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일단 창고에 이들을 쌓아둔다. 판매 승인이 나기 전부터 의약품을 구매해뒀기 때문에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창고에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2조1550억원 어치의 재고가 쌓여있다.
이 재고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기업가치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금융당국에서는 특히 유통기한과 관련된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고 의약품은 폐기 가능성을 회계 처리에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회사측에서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유통기한을 지속적으로 연장해왔고 한번도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갈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고의 유통기한이 임박했다면 일부는 비용으로 처리하고 나중에 유통기한이 실제로 연장되면 그때 환입시키는 방식으로 회계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고자산의 가치는 일정한데 유통기한 문제로 실적이 들쑥날쑥해지는 게 오히려 회계 안정성을 해치는 것 아니냐는 전문가도 있다.
쟁점3. 해외 유통사와의 정산 계약은 반기로 했는데...회계 처리는 분기마다?
셀트리온의 코로나 항체치료제 렉키로나 [제공 = 셀트리온]
세 번째 이슈는 셀트리온헬스케어와 해외 유통사간의 사후 정산을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시기의 문제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이 생산한 바이오 의약품을 해외 시장에 직접 판매하기도 하지만 다른 대형 글로벌 유통사를 쓰기도 한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유통사와 사후 정산을 통해 확정 수익을 보장해주는 계약을 맺었다.예를 들어 셀트리온헬스케어가 30%의 마진을 보장하면서 유통사에 바이오의약품을 8000원에 팔았다. 이 의약품이 시장에서는 1만원에 판매됐다. 이 때 유통사의 마진율은 20%다. 그러면 사후 정산에서 셀트리온헬스케어가 계약상 보장한 30%의 마진율을 지켜주기 위해 유통사에 1000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사후 정산을 분기마다 하지 않고 반기 또는 연간 단위로 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상장사인 만큼 분기마다 사후 정산 관련 비용을 회계에 반영하는 게 원칙에 부합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다른 회사와의 계약서 상에 이미 반기 또는 연간으로 사후 정산을 하기로 돼있는데 회계 처리를 위해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느냐라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다.
분식회계 결론나더라도 고의냐 과실이냐가 중요
기업의 분식회계 처리는 감리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셀트리온은 현재 감리위원회 논의가 끝나고 증권선물위원회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감리위원회도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려 위원 각자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 증선위로 넘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결론이 나더라도 곧바로 거래정지를 맞고 상장폐지를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식회계에 해당하는 금액을 비용 처리하더라도 상장 요건을 충족하느냐가 중요하다. 시장에서는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분식회계 의혹이 있는 회계 처리를 모두 비용으로 반영하더라도 완전 자본잠식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즉 분식회계가 맞다고 금융당국이 결론을 내도 이 문제만으로 상장폐지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낮다. 씨젠도 지난해 3월 분식회계 문제로 2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거래정지는 없었다.
하지만 분식회계가 과실이 아닌 고의로 저질러졌다고 판단되면 거래정지 가능성이 크다. 고의 분식회계는 검찰 고발 또는 통보의 조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분식회계 문제로 26일간 거래가 정지됐었다. 똑같은 분식회계지만 씨젠은 중과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고의라는 차이가 있다.
오윤석 셀트리온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회계처리 적정성 문제를 두고 4년 넘게 다투고 있는데, 이 문제가 이처럼 길어진 것은 금융감독당국의 업무 태만 때문이라고 본다"라면서 "이 때문에 기업 경영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주가 하락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득관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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