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대재해법 1호' 양주 사고…영국 1호 처벌과 닮은점 보니
입력 2022-02-01 11:34  | 수정 2022-02-01 15:28
양주 석재 채취장 토사 붕괴 사고 현장

삼표산업의 경기도 양주사업소 석재 채취장에서 토사 붕괴로 작업자 3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해 이 중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삼표산업은 이에 따라 지난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기업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확한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는 좀 더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만 삼표산업은 몇 년간 치열한 법적 다툼을 하게 됐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모델인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기업살인법) 1호 처벌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국내 첫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 양주 채석장 매몰 사고와 일부 유사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1호 처벌도 삼표산업보다 훨씬 영세한 지질조사 회사의 매몰사고였다.
2007년 제정된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2008년 4월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대표이사 징역형보다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에 초점을 뒀는데 이 점이 국내 중대재해법과 다르다.
영국의 1호 처벌은 연 매출이 3억원도 안되는 코츠월드 지질조사 업체(Cotswold Geotechnical Holdings)였다. 2008년 9월 3.5미터 구덩이의 바닥에서 토양 샘플을 채취하던 27세 직원(Alex Wright)이 흙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워낙 영세한 기업이 1호 처벌 대상이 되면서 당시 논란이 됐다.

영국 검찰은 코츠월드가 1.2미터 이상의 굴착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산업 지침을 무시했고, 직원이 사망할 당시 현장에 감독이 없었다고 봤다. 당시 검찰은 △코츠월드의 행위는 직원의 사망을 초래하고 직원에 대한 주의 의무를 크게 위반하는 것에 해당한다 △위반의 실질적인 요소는 조직의 고위 경영진이 활동을 관리하거나 조직하는 방식이었다는 법 조항을 입증해야 했다.
2011년 2월 영국 법원은 코츠월드에 대해 기업과실치사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코츠월드에 총 38만5000파운드(한화 6억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원래 양형기준위원회가 권고한 벌금은 50만 파운드였으나 소규모 기업인 점이 감안됐다. 재판부는 "사망한 직원에 대한 회사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중대한 범죄"라며 코츠월드가 10년 동안 매년 3만8500 파운드를 갚을 것을 주문했다. 코츠월드는 벌금이 과도해 회사가 청산될 수 밖에 없다며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코츠월드는 파산했다.
반면 삼표산업은 엄연한 중견기업이다. 2020년 기준 매출 6535억원, 영업이익 109억3000만원 기업이다. 특히 상시 근로자 수는 930명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우선 중대재해법보다 명확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는 조만간 판가름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현장 관리소장 1명과 삼표산업 법인을 입건한 상태다. 현장 확인 결과 토사 붕괴를 막아주는 안전장치인 방호망이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중대재해법 관련 안내문이 놓여 있다. 2022.1.26 [한주형 기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수사 이후 중대재해법 수사가 본격 시작될 전망이다.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각각 경영책임자와 현장 소장 등이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김재옥 화우 변호사는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상 현장 소장과 공장장 등은 현장의 작업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의가 인정돼 처벌돼왔다"면서 "그 법에 중대재해법이 더해져 경영책임자도 함께 처벌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는 삼표산업이 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했는지 등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삼표산업이 일용직 작업자에게 일을 맡기면서 토사가 무너질 위험이 있는지 제대로 사전조사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박영만 율촌 변호사는 "이번 양주 채석장 매몰 사고는 중대재해법 시행령 4조에서 △3.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했는지 △8.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마련했는지 △9.도급 용역 위탁시 안전확보를 위한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했는지가 문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양주 채석장 매몰 사고가 실제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삼표산업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의무를 다한 것으로 밝혀지면 처벌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인해 바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다. 한편 지금까지 기업살인법으로 처벌된 영국 기업 수는 많지 않다. 영국의 산재 사망사고는 살인이 아닌 산재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2008년 법 시행 이후 10여 년 동안 기업살인법으로 처벌받은 기업도 25곳 정도다.
중대재해법 시행된 지 이틀 만에 인명 피해 사고가 발생하면서 '국민정서법'으로 흘러 처벌될 수도 있다. 수사기관도 관련해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췄다. 이미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발생 시 과학·강제 수사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검찰도 '중대재해 수사지원추진단'의 규모를 확대하고 전담 검사를 지정했다. 검찰 내에서는 벌써부터 중대재해를 잘 수습하면 '승진 코스'라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 작년 6월 광주 학동 철거공사 참사를 수습한 광주지검 검사가 승진 코스로 여겨지는 법무부 검찰과로 발령났다.
오태환 화우 변호사는 "양주 채석장 매몰 사고가 외형상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이 맞는 데다 법령의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기소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면서 "삼표산업이 향후 몇 년간 치열한 법적 다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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