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퇴사하며 성폭력 피해 고백했다가 명예훼손…대법원은 무죄 판단
입력 2022-01-24 09:17  | 수정 2022-01-24 09:30
대법원 전경. / 사진 = 연합뉴스
성희롱 피해 겪은 후 1년여 뒤 퇴사하며 이메일로 피해 사실 공개
1,2심서는 비방 목적으로 이메일 보냈다며 유죄 판결
대법 "'2차 피해' 불안감 가질 수 있다…비방 목적이라 보기 어려워"
회사를 떠나며 직장에서 받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알린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져 1,2심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인정됐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A 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벌금 30만 원 선고를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습니다.

재판부에 따르면 A 씨는 입사 후 2년여가 지난 2016년 4월 퇴사했습니다.

문제는 2014년 10월 직원 몇 명이 참석한 술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모임에는 A 씨와 동료 3명, 팀장 B 씨가 참석했습니다. 그날 A 씨와 팀장 B 씨 사이에는 술자리 테이블 아래로 손을 잡는 등의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유부남인 B 씨는 그날 늦은 밤 3시간에 걸쳐 A 씨에게 12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같이 가자', '맥줏집 가면 옆에 앉아라', '왜 전화 안 하냐', '남친이랑 있어서 답 못 넣은 거냐'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A 씨는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1년 여가 지난 뒤 A 씨는 회사에 퇴사하겠다 밝혔고, 다음날 전국 200여 개 매장 대표와 본사 직원 80여 명에게 '성희롱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A 씨는 이메일을 통해 "B 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현재 절차상 성희롱 고충 상담 및 처리 담당자가 성희롱했던 팀장이므로 불이익이 갈까 싶어 말하지 못했다. 회사를 떠나게 됐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용기내 메일을 보낸다"고 전했습니다. 메일에는 피해 사실과 B 씨로부터 받았던 문자메시지 사진도 담겨있었습니다.

A 씨는 노동당국에 대표이사를 상대로 진정도 제기했으나 사건은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없음으로 행정종결 처리됐습니다. 이후 A 씨는 B 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017년 있었던 1심과 2심은 A 씨가 B 씨의 비방을 목적으로 이메일을 보낸 것이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지역 매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게 되자 돌연 1년여 전에 있었던 B 씨의 행동을 문제 삼은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무죄 판단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이메일은 A 씨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 조직과 구성원들의 공적이 관심 사안"이라며 "B 씨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범죄의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춰볼 때 A 씨로서는 '2차 피해'의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며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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