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동산등기법 강의에 예술·창의 연관성 적어내라?…"한심한 작태"
입력 2022-01-18 18:23 
빈 강의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허울뿐인 '핵심역량' 평가…"대학 개성 사라지고 획일화" 우려
"현실에는 별 도움 안 돼…결과만 그럴싸하게"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는 현직 교수의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18일 서울권 대학의 한 법학과 A 교수는 "교육부의 대학 평가에 따라 대학이 얼마나 한심한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드리고자 한다"며 강의 과목 개설 시 요구되는 평가지표를 공개했습니다.

A 교수가 개설하려는 과목은 부동산등기법입니다. 법원 등기직 시험이나 법무사 시험에 응시하려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고자 강의를 개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요구한 평가지표 항목은 글로벌시민·소통협력·지식탐구·창의융합·예술감성·자율실천 등입니다. 이를 '핵심역량'이라고 표현합니다. 부동산 등기법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역량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쌩뚱맞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워 보입니다.


A 교수는 "학교에서는 해당 과목이 핵심역량 중 무엇과 얼마나 관련 있는지 비율을 적어 내라고 한다"며 "솔직히 그런 것이 어디 있나? 그냥 해당 법 내용과 해석 원리를 공부하는 과목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이런 쓸데없는 작업을 우리 대학에 개설된 모든 과목에 대해서 진행했다"며 "그 이유는 교육부의 대학 평가를 받기 위해서 6대 핵심역량을 설정해야 했고, 개설된 과목이 6대 핵심역량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적시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비판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교육부가 강의 개설뿐 아니라 대학의 각종 사업 관련한 평가도 자주 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자율성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평가를 위한 항목별 배점이 있다"며 "그러다보면 대학의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 된다"고 우려했습니다. 가령, 어떤 대학은 교양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꾸리거나 다른 대학은 교양 대신 전공 중심으로 강의를 구성할 수 있음에도, 대학들이 점수표 배점에 맞춰 천편일률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현실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결과적으로 틀에 맞춰 요구하게 된다"며 "그럴싸하게 뭔가를 만들어내게끔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측면이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교육부가 인증평가를 통해 대학이 기본을 갖췄는지 평가하는데 집중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A 교수는 또 '핵심역량' 비중에 대해 "교수들은 생각나는 대로 대충 적어 냈을 것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잘했네 못했네 하면서 평가를 한다"며 "평가하는 사람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긴 알 것이다. 그래도 점수를 매겨야 하고, 그에 따라 정부 지원금을 받거나 못 받거나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한심한 작태를 그만두고, 그냥 세상의 평판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동규 기자 eastern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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