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국내 수입업체에 계약된 제품 공급을 1년 6개월 이상 일방적으로 끊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입업체는 물품을 받지 못해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게 됐는데 정부 당국이 구제에 나서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0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24일께 공정위는 국내 화장품 수입업체 LNC컴퍼니 측이 로레알을 상대로 제기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제소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는 답변서를 보냈다. 지난해 11월 말 LNC 측이 공정위에 사건을 접수한지 한 달여 만이다.
사건은 2012년 6월 LNC가 미국의 화장품 제조업체 헨리 세이어스 컴퍼니(세이어스)의 제품을 국내에 독점 공급하기로 하는 상표권 계약을 맺은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뷰티 유튜버들을 통해 세이어스의 제품들이 국내 2030 여성들에게 이름을 알리면서 덩달아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됐다.
그러다 지난 2020년 6월 로레알이 세이어스를 인수하면서 제품 공급이 돌연 끊기고 말았다. 로레알 측에서 "과거 공급된 세이어스의 불량 제품에 대해 배상해줄테니 국내 판권을 넘기라"고 제안해왔는데 이를 LNC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판권을 독점하기 위해 로레알이 국내 유통업체를 고사시키는 전략을 펴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이어졌다. 조희령 LNC 이사는 "제품 공급이 끊긴지 20개월째에 접어들면서 총 37~45억원 정도 매출 손실을 봤다"며 "직원들도 11명이나 내보내야 했다"고 털어놨다.
로레알이 협의에 소극적인 태도로 시간끌기에 나서자 LNC는 지난 11월 말 로레알을 공정위에 제소했다. 한 달 만에 공정위가 내린 결론은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공정위는 LNC 측에 "로레알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지 자료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공정거래법은 민사상 채무불이행을 넘어서 '특정 사업자의 활동을 곤란하게 할 의도로 지위를 남용했는지' 등이 추가로 확인돼야 해서 까다롭게 판단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다만 이같은 설명에 따르더라도 이번 사건이 조사 대상에 해당한다는 반론도 있다. 공급 중단으로 인해 국내 기업이 극심한 경영난에 몰린 데에 비해 글로벌 기업인 로레알은 상표권을 노리고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LNC를 대리하는 문현범 변호사(법무법인 올흔)는 "공정위가 사실관계를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고 기각을 했다"며 "국가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고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제재 대상인 로레알 한국법인뿐 아니라 프랑스 본사 등 해외 법인이 연루될 가능성에 부담을 느낀 공정위가 발을 뺀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박홍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