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성공 아이콘' 현대자동차 그랜저가 이름값을 또 했다. '5년 연속' 국내 승용차 판매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현대차 아반떼와 쏘나타 뒤를 이어 획득한 '국민차' 타이틀도 방어했다. 기아 카니발과 쏘렌토가 K8 지원을 받아 1위 자리를 탐냈지만 실패했다.
그랜저 1위, 카니발 2위, 쏘렌토 4위
그랜저 [사진 출처 = 현대차]
3일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그랜저는 지난해 총 8만9084대 판매됐다. 경쟁차종인 K8은 4만6741대 팔렸다. K7 시절보다 13.9% 판매가 늘었지만 그랜저엔 역부족이었다.카니발은 전년보다 14.5% 증가한 7만3503대를 판매하며 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그랜저를 제치고 1위도 넘볼 정도로 선전했지만 뒷심이 2% 부족했다.
3위는 아반떼(7만1036대), 4위는 쏘렌토(69934대), 5위는 쏘나타(6만3109대)로 집계됐다.
7월부터 위기, 8월엔 10위로 밀려
`판매 1위` 그랜저를 위협한 기아 카니발 [사진 출처 = 기아]
그랜저는 지난해 1위 타이틀을 빼앗길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 판매대수도 전년(14만5463대)보다 38.8% 감소했다.지난해 7~9월에는 극심한 판매부진에 시달렸다. 7월에는 5247대 팔리는 데 그쳤다. 쏘렌토(6339대)에 1위 자리를 내줬다. K8(6008대)에도 밀렸다. '국민차' 타이틀은 물론 '국가대표 준대형 세단'이라는 명성도 타격을 받았다.
8월에는 더 심각했다. 3685대 팔렸을 뿐이다. 기아 스포티지(6571대), 카니발(5611대), K5(4368대), 쏘렌토(3974대)에 졌다. 동생인 쏘나타(4686대), 아반떼(4447대)보다 적게 팔렸다. 국산차 판매 10위로 추락했다.
9월에는 판매대수가 3216대까지 줄었다. 1위 아반떼(5217대)와 2001대 차이났다. K8(3188대)과는 28대 차이에 불과했다.
반도체 부족으로 쏘나타와 그랜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 가동이 5일간 중단됐던 것도 판매 감소에 영향을 줬다.
10·12월, '월간 1위 자리' 되찾아
카니발과 함께 그랜저를 위협한 쏘렌토 [사진 출처 = 기아]
그랜저는 10월부터 뒷심을 발휘했다. 9448대 판매되면서 월간 기준 국내 승용차 판매 1위 자리를 되찾았다. 3개월 계속되던 암흑기를 끝냈다.그랜저는 11월에 6918대 팔렸다. 기아 스포티지(9448대)에 밀렸다. 대신 스포티지는 그랜저를 위협하는 차종이 아니었다.
그랜저는 1위 자리를 노리는 쏘렌토(4903대)와 카니발(3395대), 두 차종을 지원하고 그랜저 판매대수를 깎아먹는 K8(4417대)를 모두 제쳤다.
12월에는 7740대 팔리면서 스포티지(7442대)를 2위로 밀어내고 다시 1위 자리를 가져왔다. K8은 4011대 판매됐을 뿐이다.
사장차→아빠차→오빠·엄마차
현재 판매되는 현대차 그랜저(오른쪽)와 출시 당시 CF 장면 [사진 출처 = 현대차]
그랜저는 디자인, 성능, 편의성,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도 중형세단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쏘나타나 K5를 사려다 그랜저를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많다.여기에 그랜저 이미지가 마중물 역할을 담당했다. 그랜저가 5년 연속 1위를 달성한 비결은 '성공'에 있다.
'웅장, 위엄, 위대함'이라는 뜻을 지닌 차명에 어울리게 1986년 첫 선을 보인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 국산차를 대표하는 '성공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도 대기업에서 임원용 첫차로 가장 많이 판매된다. 그랜저를 타다 승진하면 제네시스 G80, G90으로 옮겨간다.
임원용 첫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그랜저(왼쪽)와 K8 [사진 출처 = 현대차, 기아]
고객층도 넓혀나가고 있다. 1~3세대에서는 50대 이상 '사장차'로 인지도를 쌓았다. 4·5세대에는 40~50대 '아빠차'로 거듭났다.6세대 들어서는 젊어진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30~40대에게도 인기를 끌며 '젊은 오빠차'로도 여겨졌다.
2019년 출시돼 현재까지 판매되는 6세대 부분변경 모델인 더뉴 그랜저는 '엄마차'로도 자리잡고 있다. 구매자 10명 중 3명이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도 광고도 판매도 '성공 신화'
그랜저 CF 캡처 [사진 출처 = 현대차]
그랜저 광고도 '성공 욕구'를 자극했다. 더뉴 그랜저 출시 당시 이슈가 된 CF도 '성공'에 초점을 맞췄다. 그랜저 뒷자리에 탄 어린 아들에게 "아빠 승진했는데"라고 웃는 장면이 나온다.엄마가 아들이 타고 온 더뉴 그랜저를 보고 "엄마, 차 좀 보소. 성공한 겨?"라고 감탄하는 내용도 있다.
'성공' 욕구를 자극하는 동시에 더뉴 그랜저 자체도 성공하겠다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결과는 '성공'이다.
다만 올해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난해에는 K8이 4월에 출시돼 그랜저 입장에서는 '어드밴티지'를 획득했다. 올해는 1월부터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한다.
계약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기아 K8 하이브리드 [사진 출처 = 기아]
게다가 K8 인기가 심상치 않다. K8은 그랜저보다 생산대수가 적지만 계약대수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K8은 지난해 4분기에도 매달 8000대~1만대 정도씩 계약됐다. 판매대수보다 2배 가량 많았다.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반도체 품귀로 발생한 출고 대란 속에서 수익성이 좋고 빠른 출고가 가능한 차종 위주로 생산을 늘리면서 그랜저가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다"며 "상반기에는 K8 출고전략, 하반기에는 7세대 신형 그랜저 출시가 국산차 1위 판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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