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당첨되면 당연히 내집 마련부터 해야죠. 2021년 마지막 날이니 남은 운을 몽땅 모아서 10만원어치 구매할 거예요."(20대 여성 A씨)
"일단 빚 갚고 나머지는 사업 자금으로 쓰고 싶어요. 예전엔 재미로 구매했는데 가정이 생기고 아이까지 태어나니 정말 간절해지더라고요." (30대 남성 B씨)
"우리 손주들 좋은 학교 보내고 용돈 팍팍 줘야죠. 직장 다닐 땐 관심이 없었는데 퇴직하니 자꾸만 사네. 새해 좋은 기운을 담아 꼭 당첨됐으면 좋겠어요" (70대 남성 C씨)
2021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1시경, 기자가 찾은 서울 노원구 지하철 7호선 마들역 근처 로또 판매점에는 100m 넘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8.8도. 거센 바람 탓에 체감온도는 더 낮아 몇 분만 서 있어도 볼이며 손이 다 빨개져 얼어붙을 것 같은 한파였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로또 판매점 앞까지 긴 줄을 마다않고 섰다.
이들은 로또 1등 당첨자를 무려 45번이나 배출한 '로또 명당'이기에 1~2시간의 기다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9월 제979회 1등 당첨자 14명 중 2명이 해당 판매점에서 당첨 돼 그 명성이 더욱 높은 곳이었다.
강추위를 뚫고 로또 명당을 찾은 이유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1등 당첨'을 향한 염원이 컸다.
벌써 3년째 매주 이곳에 발 도장을 찍고 있다는 한 20대 남성은 "평소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로또를 구매하러 온다. 보통 5000원어치, 기분 좋을 땐 1만원 어치 구매한다.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라 특별히 부푼 마음으로 들렀다"고 말했다. 당연히 1등 당첨에 대한 부푼 마음이었다.
또 다른 시민은 "이번 생에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로또 1등 당첨 뿐"이라며 "그러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로또명당을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뭘 하고 싶냐'고 묻자 한 명도 예외 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마스크 사이로 활짝 웃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당첨될까'라는 마음으로 온 이도, '당첨만이 살길'이라는 마음으로 온 이도 있었지만 당첨 순간을 상상하는 그 때 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모습이었다.
로또를 사기 위한 긴 줄에는 2030 청춘들의 모습이 다수 눈에 띄었다. 뜻대로 안 되는 취업에, 부동산 가격 폭등 속 좌절감을 느끼며 로또 당첨이라는 꿈을 좇아 왔다고 했다.
주식 등 각종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의 트렌드를 반영하듯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오래 묵혀둘 것"이라고 자신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2030세대 사이 뜨겁게 불어닥친 코인 열풍에 탑승해 봤다는 한 20대 남성은 "코인을 사보긴 했는데 어김없이 폭락했다"며 "하지만 로또는 '당첨만 되면 대박'이라는 희망을 계속 품을 수 있으니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로또의 사행성을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선 "사행성이라니. 열심히 살아봤자 취업도, 내집 마련도 어려운 우리 세대에겐 오히려 희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세대의 로또 열풍은 이미 자료로도 입증된 바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가구주의 월평균 복권 구입 비용은 2019년(1~3분기 기준) 295.9원에서 올해 1224.5원으로 313.8% 급증했다. 이는 전연령대 증가율(30.6%)을 훨씬 뛰어넘는 증가세다.
2013년까지 2조원대에 머물렀던 로또 판매액은 불황이 깊어진 2014년 3조원대로 늘어난 이후 줄곧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가 발병한 2020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했다. 로또는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더 잘 팔리는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이다. 코로나로 경마, 경륜, 경정과 같은 사행 관련 사업들이 제한되면서 상대적으로 로또로 수요가 몰리는 모습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복권위원회는 올해 복권 발행금액을 전년보다 7.1% 증가한 6조6515억원으로 책정했다. 복권 발행액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로또(온라인복권) 발행액은 지난해보다 7.3% 늘어난 5조4567억원이다. 복권 및 로또 발행액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서울 중곡동에서 로또를 구매하러 왔다는 70대 남성은 "로또에 당첨되면 노후 자금을 약간 빼놓고 나머지는 전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고 싶다"며 "2022년에는 꼭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종식돼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 이하린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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