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유리천장 뚫렸나"…대기업 여성 사외이사 1년새 2배 '수직상승'
입력 2021-12-22 11:24 
유리천장 [일러스트레이션 = 유제민]

국내 10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 숫자가 최근 1년 새 2배정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파악된 여성 사외이사는 67명으로 전년대비 90% 넘게 증가했다.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 비중도 올해 처음으로 10% 벽을 넘어섰고, 여성 사외이사가 1명 이상 활약하는 기업도 절반을 넘어섰다. 그야말로 여성 사외이사 '돌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22일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올해 파악된 국내 100대 기업 사외이사 숫자는 448명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6명 많아졌다. 올해 조사된 사외이사를 성별로 구분하면 여성의 증가 속도가 최근 1년 새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외이사 448명 중 여성은 6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35명보다 2배정도 많아진 것. 최근 1년 새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 증가율만 보면 91.4%(32명↑)로 '수직상승' 했다.
100대 기업 내 전체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도 지난해에는 7.9%였는데 올해는 15%로 단숨에 10% 벽을 넘어섰다. 이러한 배경에는 다수 기업들이 임기만료 등으로 물러난 사외이사 후임으로 여성을 다수 전진 배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내년 상반기 중에는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 비중이 20%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조사 대상 100대 기업은 상장사 매출(개별 및 별도 재무제표 기준) 기준이고, 사외이사와 관련 현황은 올해 3분기 보고서를 참고해 조사가 이뤄졌다.
이번에 파악된 100대 기업 전체 사외이사 448명 중 119명은 올해 처음으로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119명 중 42명이나 여성으로 채워졌다.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중 35.3%가 여성으로 교체된 셈이다. 새로 뽑는 사외이사 10명 중 3명 이상을 여성으로 영입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 사외이사를 배출한 기업 숫자도 덩달아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100대 기업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한 명 이상 배출한 기업은 30곳이었다. 1년이 지난 올해는 60곳으로 많아지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3분기만 해도 100대 기업 중 70곳이 여성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이 같이 여성 사외이사 증가에는 내년 8월에 시행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내년 8월부터 자산 2조원 넘는 대기업은 의무적으로 이사회 구성 시 어느 한쪽 성별로만 채우지 못하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상장사가 2600곳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이중 자산 2조원 넘는 곳은 200곳이 되지 않는다. 이사회에 여성을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 곳은 국내 전체 상장사 중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상장사 전반으로 제도 시행을 확산하려면 향후 몇년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10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 숫자가 가장 많았다. 이 회사의 사외이사 숫자는 총 8명인데 이중 37.5%인 3명이 여성이었다. 이어 삼성전자, 한국전력(한전), S-Oil, 금호석유화학도 여성 사외이사가 각 2명씩 활약 중이다. 이 중에서도 삼성전자와 S-Oil은 사외이사 6명 중 2명(33.3%), 금호석유화학은 7명 중 2명(28.6%), 한전은 8명 중 2명(25%)이 여성 사외이사로 포진됐다.
올해 파악된 100대 기업 사외이사 448명을 출생년도 별로 살펴보면 올해 만58세인 1963년생이 3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1960년생(31명), 1955년·58년생(각 30명) 순으로 다수 활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단위별로 살펴보면 1960~1964년생이 129명(28.8%)로 최다였다. 1955~1959년생은 127명(28.3%)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어 1965~1969년생 67명(15%), 1950~1954년생 61명(13.6%) 순으로 집계됐다. 1970년 이후에 태어난 사외이사는 10.5%(47명)이었다.
조사 대상자 중에는 1980년대에 출생한 MZ세대 사외이사도 지난해 2명에서 올해 3명으로 1명 더 늘었다. 한전 방수란 이사는 1987년생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대 기업 사외이사 중 최연소 자리를 지켰다.
사외이사들의 핵심 경력을 구분해 보면 대학 교수 등 학계 출신이 448명 중 205명으로 45.8%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41.7%보다 4%포인트 정도 높아진 수치다. 이어 CEO 등 재계 출신 89명(19.9%), 국세청·금융감독원원·공정거래위원회·관세청·감사원·지자체 등 관료 출신 80명(17.9%), 판검사·변호사 등 법조계 출신 51명(11.4%) 순으로 조사됐다.
올해 기준 100대 기업 전체 이사회 인원 중 여성 비율은 9.5%였다. 전년 동기 대비 4.3%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국내 100대기업 기업 이사회 중 여성 비율이 10% 정도에 근접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등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국내 여성 이사회 비율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소속된 기업의 전체 이사 중 여성 비율은 올해 처음 30%를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10년 전 미국 상장사의 여성 이사 비율만 해도 16% 수준이었다. 수치로만 보면 아직 우리나라의 여성 이사회 진출 속도는 미국보다 10년 이상 뒤처진 셈이다.
지난해 기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상장기업 이사회 내 여성 이사의 비율도 각각 34.3%, 43.3%, 25.2%로 우리나라 기업보다 높았다. 이 가운데 독일은 이사가 3인 이상인 이사회의 경우 30%를 여성에 할당하도록 의무화 했고, 노르웨이는 임원이 9명 이상인 경우 남녀 비율을 각 40% 이상 채우도록 시행하고 있다. 이슬람이 국교인 말레이시아도 내년부터 상장기업에 최소한 한 명의 여성 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법을 개정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혜양 유니 코써치 대표이사는 "최근 ESG경영 열풍과 내년 법 개정 시행 등을 앞두고 재계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하려는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여성 사외이사 인재후보군이 매우 적어, 기업에서 마땅한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여성 사외이사 인재를 육성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다양한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영상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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