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고소서 무죄 확정에 손배 소송
대법, 가해자 손 들어줬던 원심 파기
대법, 가해자 손 들어줬던 원심 파기
대법원이 가해자의 손을 들어줬던 원심을 파기하고 한 대학의 어린이병원 후원회에서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계약직 여직원의 진술을 인정했습니다.
오늘(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한 대학 어린이병원 후원회의 전직 계약직 직원 A 씨가 후원회 이사이자 외래진로교수인 B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A 씨는 2015년 4월부터 10월까지 B 씨에게 신체적·언어적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 및 폭행 등을 당했다며 B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 씨에 따르면 B 씨는 "다리가 가늘고 새하얗다", "몸매가 빼빼 말랐었는데 요즘은 살이 쪘다", "남자친구 생겼냐? 일 안 하고 정신이 팔려 있다" 등의 성희롱성 발언을 했습니다.
또 후원 행사가 열린 한 골프장 VIP룸에서는 A 씨가 자선 행사를 망쳤다는 이유로 B 씨가 회초리를 구해오도록 해 나뭇가지로 엉덩이를 때렸으며 B 씨의 차 안에서도 추행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행사 다음 날 A 씨는 후원회 사무국장을 찾아가 6개월 동안 B 씨에게 받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정리해 보고하고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B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 목격자도 없고, A 씨가 VIP 룸에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추행을 당했다면서도 행사를 마칠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며 "A 씨가 회초리를 구해온 일로 인한 서러움, 자신의 계약직 유지 여부에 대한 걱정 등 여러 가지 감정에서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라고 판단했습니다.
형사 소송이 무죄로 결론나자 A 씨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민사소송 역시 1심과 2심 모두 '증거 부족'으로 인해 패소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B 씨가 자신의 추행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VIP 룸에서 벌어진 상황에 관해 인정한 부분에 주목해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A 씨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및 수사기관에 고소한 시점과 형사사건에서 진술을 비롯한 B 씨의 대응을 종합하면, 언어적 성희롱에 관한 A 씨의 주장도 내용이 사실일 고도의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자선행사 당일 VIP 룸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주장된 사실관계는 B 씨도 대부분 다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중 상당부분은 B 씨가 관련 형사사건에서 인정하기까지 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B 씨의 행위는 고용 관계에서 직장의 상급자인 B 씨가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A 씨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준 직장 내 괴롭힘이자 성희롱에 해당한다.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대법원은 파기 환송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하는 서울중앙지법에 사내 메신저 내용, A 씨의 피해 내용 정리표, 사무국장이 신고를 받은 뒤 녹음한 원고 등을 면밀히 살피고 A 씨, B 씨 등의 진술 신빙성과 증거 가치를 평가해 B 씨의 불법 행위 증명 여부를 따질 것을 구체적으로 주문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A 씨 측은 입장문을 내고 "이 사건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기를, 법원에는 성찰과 고민을, 검찰과 경찰 등 사법당국에는 미안함과 교훈을 남기기를 바란다"며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관련법이 시행되기 전의 일이더라도 그에 해당하는 행위들이 위법부당하다는 점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차유채 디지털뉴스 기자 jejuflower@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