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인정 위해 수술 강제하는 것은 인권침해"
자궁적출 없이 여성→남성 정정 신청 허가
자궁적출 없이 여성→남성 정정 신청 허가
자궁난소적출술 이나 고환적출술 등의 생식능력 제거 수술이 성별 정정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신체를 손상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인격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수원가정법원 가사항고2부 문홍주 재판장은 지난 13일 박모씨(21)가 낸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했습니다. 이로써 박씨는 법적으로 여성임을 포기하고 남성의 신분을 갖게 됐습니다.
박씨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14년 무렵 스스로를 남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해 2018년부터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아왔습니다. 이듬해 ‘성전환증을 진단 받고 유방절제술을 받았지만 생식 능력을 제거하는 수술이나 남성 성기를 만드는 외부성기 형성 수술은 받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자궁적출술과 같이 생식능력의 비가역적인 제거를 요구하는 것은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신체의 온전성을 손상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나치게 제약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여성의 신체적 일부 요소를 지니고 있다며 박씨의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자궁·난소적출술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항고심은 박씨가 다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2심 재판부는 신청인은 지속적인 호르몬 치료로 인해 남성 수준의 성호르몬 수치와 2차 성징을 보이며 장기간 무월경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면서 외모나 목소리 등이 남성화된 현재 모습에 대한 만족도가 과거 여성으로 지냈을 때보다 분명해 여성으로 재전환을 희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결정은 대법원의 ‘성전환자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개정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지침은 영구적인 생식능력 상실과 외부성기의 형성 수술을 성별 정정의 허가기준으로 규정했는데, 이 부분이 지난해 2월부터 참고사항으로 바뀌었습니다.
남성 성기를 갖추지 않아도 성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정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은 2013년 나온 적이 있지만, 자궁·난소적출술을 통해 생식능력을 비가역적으로 제거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조건이 충족되면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정할 수 있다고 법원이 결정한 것은 처음입니다.
박씨를 대리한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트랜스젠더의 자기결정권,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인정하며, 현행 대법원의 지침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