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게 만드는 '슈퍼을' ASML의 몸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ASML은 납품 업체 구조상 '을'에 위치하지만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데다, 한해 생산대수도 한정적이다 보니 주문자인 '갑'마저 고개 숙이게 한다.
올들어 반도체 대란과 함께 ASML의 기업가치와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애플과 TSMC, 삼성전자 등을 제치고 글로벌 브랜드 순위에서 1위에 오르는가 하면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무려 77% 이상 상승했다.
◆주가 올해 400달러 가까이 상승
1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ASML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으로 887.31달러(약 105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ASML의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70% 이상 상승했다. 1월4일 종가로 500.00달러(약 59만원)에 불과했던 ASML 주가는 이후 꾸준히 오르더니 이날 887.31달러까지 상승했다. 연초부터 이날까지 77.5% 증가한 셈이다. 지난 3월 26일은 전날 보다 7.14%가 오르며 역대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AMSL 주가 추이. [사진 출처 = 나스닥 홈페이지 캡처]
ASML 주가 상승세는 압도적인 점유율과 대체 불가능할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한 만큼 성장성이 확실히 보장되기 때문이다.ASML은 글로벌 노광장비 시장에서 85%의 점유율로 반도체 장비 업종 중 가장 확실한 독점 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경쟁사로는 니콘과 캐논이 있지만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니콘과 캐논은 반도체용 노광장비 시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러 노광장비 가운데 ASML이 시장점유율 10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EUV 노광장비다. 노광장비는 어떤 빛을 쏘느냐에 따라 공정 횟수를 줄이고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기존 불화아르곤은 7나노(nm, 10억 분의 1m) 공정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하지만 그 이하는 힘들다. 이 한계를 극복한 것이 EUV 노광장비다.
TSMC와 삼성전자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들이 5나노 이하 미세 공정까지 도달한 상태인 만큼 EUV 장비 도입은 시급하다. 최근엔 D램 업체들까지 EUV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노광장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작년 10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았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하지만 ASML이 매년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은 한정적이다 보니 장비 확보를 위한 경쟁은 전쟁과도 같다고 한다. 업계에 따르면 ASML은 내년 생산량까지 모두 주문이 끝난 상황이다.ASML의 EUV 생산량은 지난해 31대, 올해 40여대 정도다. 내년에는 55대, 23년 이후에는 60대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지만 이 마저도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ASML 네덜란드 본사를 직접 찾아 물량 확보를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주문자인 삼성전자가 고개를 숙이는 '슈퍼을'의 위치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ASML의 제한적인 생산능력에도 선주문 수요가 견조한데다, 경쟁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가 상승 동력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애플 TSMC 다 제치고 브랜드 가치 세계 1위
이 같은 호재는 실적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해 ASML은 매출 140억유로(약 19조원), 순이익 36억유로(약 5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8.6%, 38.5% 급증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올해도 장비 주문이 늘며 호실적이 예상된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매출과 순이익을 각각 189억유로(약 26조원), 56억유로(약 8조)로 전망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2020년 실적발표에서 "140억 유로의 매출에는 31대의 EUV 시스템의 매출(45억 유로)이 반영됐다"며 "2020년은 ASML에 매출과 영업이익 면에서 큰 성장을 보여준 한해였다"고 평가했다.
2021 글로벌 브랜드 톱 100. [사진 출처 = 퓨처브랜드]
실제 EUV 노광 장비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대당 1500억~2000억원으로 알려졌지만 수요 급증으로 3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이 장비를 해외 고객사에게 수출하는 데엔 40개의 컨테이너와 20대의 트럭, 3기의 보잉747기가 필요할 정도로 거대하다"고 보도했다.
ASML의 기업 가치도 올해 크게 올랐다. 최근 영국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 퓨처브랜드가 발표한 '2021 글로벌 브랜드 톱 100'에서도 ASML은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8위에서 7단계 수직상승했다. .
지난해 1위였던 애플은 ASML에 밀려 2위로 랭크됐고, TSMC는 7위에 머물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보다 10단계나 떨어진 13위에 올랐다.
퓨처브랜드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 '앞으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70%였지만 올해는 69%로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제자리 수준일 것'이라는 답변은 과거 3년 동안 24%에서 올해 27%로 높아졌다.
이번 조사는 3000명의 기업 전문가들이 지난 7월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인지도와 미래 사업 가능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승한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