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양실조 키 135㎝ 충격적 발견"…경주 성벽 제물 20대女 인골 나왔다
입력 2021-09-07 09:02  | 수정 2021-09-07 10:30
경주 월성 서성벽에서 발견된 20대 여성 인골. [사진 제공 = 문화재청]


경주 월성 서성벽에서 발견된 20대 여성 인골. [사진 제공 = 문화재청]
신라 시대 축조된 경주 월성 서성벽 유적에서 키 135㎝에 체격이 왜소한 20대 여성 인골이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이 인골이 성벽을 쌓는데 제물로 사용된 인신공희(人身供犧) 사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골 수습 당시 곡옥(반달 형태로 다듬은 옥) 모양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말과 소 등 대형 포유류 늑골도 함께 발굴됐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무덤이 아니라 성벽 기저부 조성층 바로 위에 인골이 위치해 있어 인신공희로 추정된다"며 "성벽을 쌓아 올리기 전에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인신공희가 거행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인골을 수습할 당시에는 키가 작아 미성년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정밀 조사 결과 성장판이 닫힌 성인으로 영양 상태가 부족해 골격이 왜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주무관은 "생전에 힘든 시절을 보냈으며 신분이 낮아 성벽 제의에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성 서성벽 인신공희 지점. [사진 제공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1985년과 1990년 확인된 출처 불명의 인골 20구 이상 또한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17년 수습된 50대 남녀 인골 역시 인신공희 사례다. 당시 키 166㎝ 남성 인골이 똑바로 누워 있고, 키 159㎝ 여성 인골이 남성 인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얼굴과 한쪽 팔이 약간 돌려져 있는 모습으로 묻혀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서성벽이 인신공희로 축조된 국내 유일 성벽으로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완공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축조 연대는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더불어 탄소를 측정하는 가속질량분석기 연대 분석에 기반해 정확성을 높였다고 덧붙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월성이 파사왕 22년(101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실제 축조 연대보다 많이 앞당겨진 시기로 여겨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4세기 중엽에는 사로국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병합해 신라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였다"며 "인신공희를 할 만큼 월성 축조에 많은 공력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성 서성벽 조사구간 위치. [사진 제공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이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 토성으로 알려졌지만, 그 축조 수준은 토목공학적으로 다양한 축성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먼저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공법 등 기초부 공사를 통해 월성 지형의 연약한 지반을 보강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에서는 볏짚·점토 덩어리·건물 벽체 등을 다양한 성벽 재료로 사용해 높고 거대하게 만드는 토목 기술이 확인됐다. 월성 성벽은 너비 약 40m, 높이 10m 이상으로 추정돼 신라인들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당시 왕성의 웅장함을 그려볼 수 있다.
월성 서성벽 단면 모습. [사진 제공 = 문화재청]
월성 서성벽 조사 성과는 7일 오후 4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 현장설명회로 공개된 후, 다음 날인 8일 관련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학술적 의미를 토론할 예정이다. 전문가 토론회는 1부 '월성 서성벽 구조, 축조 연대, 그리고 인신공희', 2부 '신라권역과 백제, 가야권역 토성 비교, 무덤 자료 및 문헌적 비교 검토' 순서로 진행되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에서도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왕성 월성의 궁궐 배치와 성벽 축조 재료의 자연과학적 분석에 대한 조사·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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