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지역에서 식당에 계란을 납품하는 자영업자 박모씨는 1년 반 넘게 업무 이외 대면 접촉을 끊었다.
박씨는 "납품 경쟁이 치열해 하루라도 공급을 못하면 대신하겠다는 영세업체가 줄을 섰는데 자칫 내가 자가격리를 당하기라도 하면 가족들 살 길이 끊어진다"며 "이 같은 상황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잇달아 연장되는 등 코로나19 사태 타격이 커지며 자영업자들이 한계에 몰렸다. 자영업자 열명 중 한명은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으면 1년 내 폐업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1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음식점·도소매·숙박업 등 소상공인 비중이 높은 8개 업종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자영업자 39.4%는 당장 폐업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감소(45.0%), 고정비 부담(26.2%), 대출상환 부담과 자금사정 악화(22.0%) 등을 이유로 꼽는 목소리가 많았다.
◆ 향후 1년 최대 고비
앞으로 1년이 자영업자 한계상황의 고비다. 폐업 고려중인 자영업자의 경우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3개월 이내 폐업할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이 33.0%로 가장 많았다.
예상 폐업시점을 3~6개월 뒤로 본 자영업자도 32.0%로 많았고 6개월에서 1년 이내로 본 업체도 26.4%에 달했다. 이대로면 1년 이내 폐업할 것으로 본 자영업자가 전체의 91.4%에 달한 것이다.
대다수 자영업자(90.0%)는 4차 대유행 직전에 비해 매출과 순이익이 급감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균 매출 감소액은 26.4%, 순이익 감소액은 25.5%로 조사됐다.
폐업 고려하는 자영업자 속내는 [자료 = 한국경제연구원]
◆ 금리 인상에 대출 압박도
문제는 코로나19 타격에 금리 인상 악재까지 겹쳤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가계빚(1806조원·2분기 기준) 급증 등을 이유로 기준 금리를 0.75%까지 올렸는데 연내 추가 인상이 유력하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대출로 운영 자금을 끌어쓴 자영업자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이들 취약고리가 잇딴 금리 인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면 부채 폭탄이 다른 부문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대출을 끼고 있는 자영업자는 246만 6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이 받은 대출 규모는 832조원으로 전체 가계대출의 49%에 달한다. 올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18.8% 급증해 가계대출 증가율(9.5%)의 2배 수준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19 충격을 크게 받은 업종에서 빚 늘어나는 속도가 가파르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2분기 산업별 대출금 통계에 따르면 도·소매(14.4%), 숙박·음식(13.1%) 업종 대출금이 전년에 비해 크게 늘고 있다. 전체 산업 대출 증가율(11.3%)에 비해서도 빠른 속도다.
한경연 설문 결과 자영업자 60.4%는 향후 금리 인상 등의 이유로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전에 비해 대출을 줄였다고 밝혔다. 다만 자영업자 열에 네명(39.6%)은 코로나19 국면 전에 비해서도 대출이 늘었다고 응답해 금리 인상기에 이들에게 자금 압박이 집중될 전망이다.
자영업자들이 바라는 정부 정책지원 [자료 = 한국경제연구원]
◆ 취약계층 선제대응 필요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들어가기 전 코로나19 타격이 가중된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처방한다.
김인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은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초저금리로 대출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타격층에 대한 금융중개대출 지원 실적은 15조 3000억원으로 한도(16조원)가 거의 다 찼다.
과도한 가계부채 억제 정책을 경계하는 시각도 나온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정부 주도로 급하게 가계부채 억제 정책을 시행하기 보다는 금융 부문이 자율적으로 대출 한도를 설정하는 선진국형 여신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 28.4%는 사태 해결 위해 정부가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영업손실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대료 직접 지원(24.9%), 백신 접종 확대(16.5%), 대출상환 유예 만기 연장(12.7%) 등도 주요 정책 과제로 꼽혔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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