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기존에 운영하던 개인사업체를 빚을 갚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폐업하고 회사를 새로 설립했다면, 새 회사가 빚을 갚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A씨가 C사를 상대로 낸 동산 인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판결에 따르면 A씨 측은 B씨로부터 약 16억원을 받고 토지와 건물을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 중 1억4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B씨는 이후 운영하던 사업체를 폐업하고 유사한 업종의 C사를 설립했다. C사 주식 절반은 B씨가, 나머지 절반은 가족들이 소유했다. C사는 기존 회사의 빚을 인수하면서도 B씨가 A씨에게 진 빚은 인수하지 않았다.
A씨는 C사가 B씨의 채무를 갚아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B씨는 새 회사가 빚을 갚을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B씨와 C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채무 이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C사는 A씨와 B씨의 각서 작성 시점으로부터 약 3년이 지나 설립된 회사로 채무 면탈과 상관관계가 없다"며 "B씨는 개인사업자인 한편 D사는 주식회사여서 법적 성질을 달리한다"고 했다.
2심은 원심을 뒤집고 A씨 승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B사 설립은 이 사건 채무의 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인격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C사는 B사의 자산과 부채를 포괄적으로 이전받으면서 A씨에 대한 채무만 인수하지 않았는데 이는 의도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유지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 재판부는 "C사가 그 주주와 독립된 인격체란 이유로 A씨가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며 "A씨는 C사에 대해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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