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러기 아빠 A(43)씨는 미국에 있는 가족을 보러가기 위해 '노쇼(No Show) 백신'을 맞기로 결심했다. 백신 접종 확인서가 있으면 귀국 후 자가격리가 면제된다.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도 1년째 만나지 못한 자녀들을 보고 오는 것이 가능해진다. A씨는 서울에 있는 위탁 의료기관 30여곳에 전화를 돌린 끝에 겨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했다. A씨는 "약간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특이한 이상증상은 없었다"며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효과"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접종을 포기한 '노쇼' 물량을 맞으려는 대기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비명단 조건. [사진 출처=중앙방역대책본부]
◆ 30세 이상, AZ백신만 가능2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전날 기준 '기타 대상자'로 분류된 2분기 누적접종자는 3만558명으로 3만명을 돌파했다. 기타 대상자에는 필수목적 출국자와 예비명단이 포함된다. 예비명단은 접종 포기로 이미 개봉한 백신의 폐기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접종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맞을 수 있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만 해당되며, 30세 미만은 안전성 이유로 접종이 불가능하다. 지난달 21일 누적 1995명에 불과했던 기타 대상자 누적접종자 수는 28일(1만3216명) 1만명을 넘겼고, 이틀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예방접종센터는 코로나19 치료병원 종사자와 75세 이상 어르신, 노인시설 입소·이용 및 종사자만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보건소에서는 내원환자와 공무원이 대상이다. 대부분 노쇼 백신 발생→예비 명단 대상자→30세 이상 일반 대기자로 순서가 넘어간다. 위탁 의료기관의 경우 별도 조건 없이 예약 백신이 소진되지 않을 경우에 누구라도 접종할 수 있다. 문의가 폭주하는 것은 주로 위탁 의료기관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첫날인 27일 서울 동대문구 왕십리 휴요양병원에서 간호사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2021.02.26.한주형 기자
◆ 격리면제 혜택에 수요 증가노쇼 백신 대기자가 늘어난 건 혜택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5일부터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확진자 접촉이나 해외에 다녀온 이후 자가격리를 면제해준다. 여기에 미국이 지난달 백신 접종 여행객에 한해 자가격리 의무를 없애는 등 조건을 완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위탁 의료기관 관계자는 "하루 백신 접종 대상자가 12명인데, 이중 3~4명이 노쇼"라며 "남은 물량을 맞으려는 분들은 대부분 고령층"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노쇼 백신은 오후 4시 이후로 안내하고 있다"며 "최근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접종 대기자가 많아졌고, 폐기하는 물량도 줄었다"고 말했다.
접종 완료자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노쇼가 발생한 병원 위치와 후기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노쇼 백신을 접종받았다고 밝힌 B씨는 "노쇼 백신도 보통 15~20명은 취소하는데, 이는 중복 신청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또 대구에 거주하는 C씨는 "동구, 서구, 남구, 북구, 수성구 전화 돌린 끝에 달성군에서 바로 맞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접종 후 20시간이 지나자 팔을 들면 당기는 정도"라고 말했다.
[신미진 매경닷컴 기자 mjsh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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