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묵탕부터 깍두기까지, 내가 먹은 '재사용 음식' 얼마나 될까?
입력 2021-04-20 11:34  | 수정 2021-07-19 12:05
요즘 식당에 가면 자꾸만 시선이 가는 쪽이 있습니다.

손님이 남기고 간 반찬을 치우는 직원의 모습입니다.

탈탈 털어 한데 모아 버리면 안심입니다.

반대로, 남은 반찬끼리 섞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회수해가는 모습을 보면 찝찝해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반찬은 섞어 버리더라도 김치만큼은 따로 고이 들고 가는 경우도 종종 목격합니다.

그때부턴 밥을 먹어도 먹는 게 아닙니다.

'내가 먹고 있는 이 배추김치가, 이 깍두기가 남이 먹던 것인가'라는 생각에 자꾸만 신경이 쓰입니다.

지금 당신이 먹는 김치는 누군가 신나게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면서 먹던 김치일 수도, 거나하게 술이 취한 채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던 김치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손님이 먹던 어묵탕 국물을 육수통에 다시 넣었다는 의혹을 받은 부산의 한 식당이 논란이었습니다.

지난 18일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산 여행 중 한 식당에서 손님이 먹던 음식을 육수통에 넣었다가 빼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작성자는 부산 중구의 60년 맛집에서 어묵탕을 주문해 먹다가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국물을 데워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러자 식당 측은 손님이 먹던 국물을 육수통에 부은 뒤 다시 육수통에서 국물을 퍼내 손님 테이블로 가져다줬다고 합니다.

부산 중구청은 해당 식당을 찾아가 현장 조사를 벌였고, 온라인 커뮤니티 글 작성자 주장이 사실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3월엔 부산 한 돼지국밥집에서 손님이 남긴 깍두기를 재활용하는 모습이 유명 BJ의 생방송으로 송출됐습니다.

하지만 깍두기를 재사용한 돼지국밥집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식당 입구에 써붙인 채 지난 달 29일부터 영업을 재개했습니다.

15일 간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이 끝나고 다시 문을 연 겁니다.

이 뿐 아닙니다.

지난 달,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동태탕 가게에선 다른 손님이 먹다 남긴 생선 곤이를 재사용하는 모습이 손님에게 목격됐습니다.

손님에 따르면 해당 종업원은 팔팔 끓여줬으니 상한 음식은 아니지 않냐"는 항변을 내놨다고 합니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 주변에서 나오는 반응은 비슷합니다.

"걸린 식당은 소수지만 운이 좋아 넘어가는 식당은 얼마나 많겠어."

한 마디로, 자포자기한 반응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먹은 '재사용 음식'은 얼마나 될까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일반음식점, 식품제조가공 및 판매업체, 급식소 등의 곳에서 식품위생법을 위반해 행정처분을 받은 건수는 총 18만3371건에 달합니다.

위반유형별 내역을 살펴보면 음식 재사용 사례가 집계되는 항목인 '영업자 준수사항 위반'이 4만6833건으로 가장 많습니다.

이처럼 음식 재사용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건 '희박한 위생개념'만 탓해야 할까요?

솜방망이 처벌과 허술한 감시도 문제입니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는 경우 15일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거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부산 돼지국밥집처럼 15일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고 나면 다시 문을 열 수 있는 겁니다.

음식 재사용에 대한 점검이 정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식당 직원들이 경각심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슈가 터지면 특별점검에 나서기만 할 뿐, 평소엔 공무원 인력 부족을 이유로 정기점검을 하지 않는 지자체가 대부분입니다.

손님이 특정 식당에 대한 민원을 제기해야 비로소 단속이 이뤄지는데, 사진이나 영상같은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엔 처벌이 어려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넘어갑니다.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라도 식당 점주가 공개를 거부하면 지자체 직원이 이를 강제로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점검이 식재료의 보관 상태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게 되는 겁니다.

전문가는 손님들의 적극적인 민원 제기와 단속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현재 구청 위생과 등에서 점검 나오는 것이 사실상 실효성 있는 지는 의문"이라며 "점심이나 저녁 시간 직후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 바로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데 공무원 인력상 그렇게 운영되고 있지 못하고 있어 적발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음식 재활용 안 하는 식당'이라는 인증서를 각 식당에 부착하는 건 어떨지,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이 재활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할 지자체는 인력이 부족해 어렵다는 입장이고 외식업중앙회는 "굳이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입장이니 현재로선 음식 재사용을 막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소비자 뿐인 듯 싶습니다.


[ 이상은 디지털뉴스부 기자 / leestellaaz@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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