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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에 ‘불문율’이란 없었다 [김대호의 야구생각]
입력 2021-04-20 10:20  | 수정 2021-04-20 14:18
프로야구가 때아닌 "불문율" 논쟁에 휩싸였다. 경기 후반 야수 등판으로 해설자로부터 비난을 받은 수베로 한화 감독. 사진=MK스포츠 DB
MK스포츠 김대호 기자
2021시즌 초반부터 ‘불문율 논란이 뜨겁다. 승부가 기울어진 경기 후반 불펜 투수를 아끼기 위해 야수를 마운드에 올리자 TV 해설자가 돈 내고 못 볼 경기”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역시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후반 볼카운트 3볼에서 타자가 맘먹고 방방이를 휘두르자 상대팀 감독이 발끈했다.
위 두 사례 모두 미국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외국인 감독이 관련돼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나 벤치는 어리둥절했다. 선수 시절 이런 경우에 대한 대처법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 중 ‘불문율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불문율은 상대에 대한 ‘예의 ‘배려인데 한국 프로야구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승부에선 무조건 이겨야 하고, 큰 점수 차가 나도 무참히 짓밟아야 했다. 상대가 경기를 포기한 것이 확실해도 주전 타자를 빼지 않고 타율관리를 해줬다. 홈런을 날린 타자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면서 그라운드를 돌았다. 선수들은 덕아웃 밖으로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홈런타자를 환영했다. 오죽하면 ‘기록은 영원하고, 비난은 순간이란 참담한 명언(?)이 등장했을까 싶다.
야구는 단체 구기종목으론 매우 특이하게 ‘팀 대 팀의 대결이면서 동시에 ‘개인 대 개인의 대결이다. 팀 승패와 별개로 개인의 승패가 기록된다. 투수와 타자가 1 대 1 대결을 펼친다. 한쪽이 승자가 되면 다른 한쪽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유독 야구에 많은 ‘불문율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지금의 승자가 언제든 패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자는 차원이다.
불행히도 한국야구의 선배들은 상대에 대한 예의 이전에 승리의 가치를 먼저 배웠다. 이는 야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마찬가지다. 도루가 많은 상대를 저지하기 위해 1루 베이스 앞에 물을 뿌린 감독이 있는가 하면 상대 배터리의 사인을 훔치려고 1루 코치박스를 변형시킨 감독도 있었다. 무릎 수술을 하고 3년여 만에 경기에 나온 타자의 무릎을 맞히라고 투수에게 지시한 감독도 있었다. 대부분의 프로야구 감독들은 이런 지도자에게 야구를 배웠다.
지금도 한국 프로야구엔 ‘불문율이 없다. ‘빠던으로 통칭되는 방망이 던지기를 한국식 세리모니로 포장하고 있지만 매우 건방진 ‘오버 액션일 뿐이다. 이승엽이나 추신수가 홈런을 친 뒤 고개를 숙이고 베이스를 도는 이유를 살펴봤으면 좋겠다.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무엇인지 아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MK스포츠 편집국장 daeho9022@naver.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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