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명산인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전남 화순군. 읍내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달리자 야트막한 산에 둘러싸인 주도리 마을이 나온다.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막다른 곳에 이르러 노란 수선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농장이 한 곳 나온다. 허브뜨락 치유농장이다.
치유농업법 시행을 맞이해 좋은 치유농장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농촌진흥청이 추천한 곳들 중 한 곳이다. ▶관련기사 본지 4월 12일자 A16면
이 곳 허브뜨락은 대학에서 교육학 교수를 하던 김남순 씨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양영자 씨 부부가 20여 년 전부터 가꿔온 곳이다. 아담한 산을 낀 4500평 땅에 부부가 사는 주택을 비롯해 실내외 교육장, 온실, 정자 등 시설이 들어서 있다.
무엇보다 이 곳을 돋보이게 하는 건 꽃과 나무들이다. 이 농장엔 1년 내내 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꽃이 있고, 없는 나무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수종이 있다. 겨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납매 갈마우지 미선나무 등 한겨울 눈 속에서도 고운 색을 내는 식물도 적지 않다. 지금은 수선화가 제철이다. 노란색도 있지만 흰색도 있다. 수선화 사이사이엔 작약도 있고 철쭉도 있다. 샛 노란 꽃이 조만간 붉은색으로 갈아입을 참이다. 동백 산벚 라벤더 은목서 라일락 바이텍스 살구 자두 등등 꽃을 피우는 작물과 나무 이름을 일일이 대기도 어렵다. 이 곳에 심겨져 있는 꽃과 나무들이 대략 500종이 넘는다고 한다. 어느 식물원에 간들 이보다 다양한 꽃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농장은 매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왔다. 지금도 방문객들이 조금 더 농장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흙길에 목침을 까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닭도 새로 들여놓을 요량이다. 닭장을 새로 만들면서 앞에는 닭이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도 마련했다. 그렇게 매년 조금씩 치장을 하다보니 지금의 뜨락농장이 완성됐다.
이 농장에선 다양한 치유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작년과 재작년 2년간은 지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화순군에 거주하는 나이 30대 이상의 지적장애인들이 대상이었다. 김남순 대표는 "지적장애인 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며 "농장에서 개별직업프로그램(IVP)을 적용해 각자의 관심과 소질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가르치다보니 졸업한 제자들 중에서 이런 쪽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많다"며 "그들 중 몇 명이 자원봉사로 교육 지원에 나서준 덕분에 성공적으로 교육을 완수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허브뜨락 치유농장 안에는 참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도 하고 다양한 활동도 할 수 있는 투명 돔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정혁훈 기자]
뜨락농장은 올해는 새로운 치유활동에 도전한다.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교육 성공을 발판으로 이번엔 그들이 초기 치매 환자들과 함께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화분 가꾸기에 소질이 있는 장애인과 비슷한 관심을 가진 치매 노인이 함께 원예 활동을 하면서 서로의 치유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가 치유농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평소 존경하는 철학자 에피쿠로스 영향이 컸다. 쾌락주의를 창시한 에피쿠로스는 자연주의에 심취했고, 플라톤이 세운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 바로 맞은편에 가든스쿨을 설립해 운영했다. 이 가든스쿨은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신분과 성별, 인종 등에 관계없이 교육생을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인간이 가장 마음이 평정한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에피쿠로스는 쾌락이라고 했다"며 "그가 추구한 가든스쿨 같은 곳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이 곳 주도리에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장애인이나 치매환자들, 암환자들은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이 이 곳에서 치유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 나 스스로 가장 행복하더라"고 말했다.
이 곳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주로 텃밭과 화분 가꾸기, 허브상품 만들기, 산책 등이다. 허브 오일이나 식초, 소금, 차 등을 만드는 게 특히 인기다. 양영자 대표는 교육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기 위해 아동요리사, 쌀요리전문가, 식품가공기능사, 발효관리사, 가양주제조사, 푸드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양 대표는 "화순군에 있는 장애인 기관이나 치매안심센터 등 기관의 요청 위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요청하는 경우에도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북 완주군에 있는 드림뜰 힐링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인근 거주 노인들이 원예활동 후 족욕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제공 = 드림뜰 힐링팜]
또 다른 치유농장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드림뜰 힐링팜을 찾았다. 전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정도면 도달하는 이 곳은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치유농장이다. 지난달 시행된 치유농업법을 관할하는 농촌진흥청이 주목하고 있는 치유농장 중 한 곳이다.산자락 2500평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젊은 여성인 송미나 대표다. 송 대표는 전북대 원예치료학과를 졸업한 뒤 2011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이 곳으로 정착해 들어왔다. 농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3년. 치유농장을 일구던 중 인근 마을의 청년농업인 남편을 만나 지금은 알콩달콩 농장을 키워가고 있다.
이 곳 농장에선 가장 전형적인 치유활동인 원예치료와 더불어 동물매개 치유, 숲 치유 등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온실에서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고, 교육장에서 다양한 소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작은 농장엔 염소와 미니돼지, 강아지 등이 뛰어논다. 입구 쪽에는 깔끔한 치유 카페가 있어 음료와 디저트 등을 맛볼 수도 있다. 숲길에서 산책을 하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힐링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송미나 드림뜰 힐링팜 대표(맨 오른쪽)가 농장을 찾은 방문객들과 함께 숲 치유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드림뜰 힐링팜]
이 농장은 최근 우울감 극복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가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완주군민은 물론 타 시도민까지 신청을 받아 원예와 숲치유 중심으로4회 정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인 '식물 쑥쑥 마음 쑥쑥'도 운영하고 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이 함께 신청하면 꽃다발과 디저트를 만들고 피크닉을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팜 파티 프로그램도 개별 신청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송 대표는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치매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다문화가정과 장애인 비율도 꾸준하게 높아지고 있어 치유농장이 갈수록 더 필요해지고 있다"며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에는 연간 1만명 정도가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치유농장을 넘어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 큰 그림을 갖고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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