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기업이 한국 기업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물품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북한 기업이 원고인 이 사건 재판관할권이 대한민국 법원에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김춘수 부장판사는 6일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 명지총회사와 이들의 대리인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소장이 한국 기업 4곳을 상대로 원고 각각에 1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달라고 제기한 물품대금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북한 기업이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낸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명지총회사가 한국 기업과 이 사건 계약을 체결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제3의 중국 회사가 명지총회사나 별도의 북한 기업으로부터 이 사건 물품을 매입해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매도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 점을 감안한 판단이다.
또 명지총회사와 함께 소송을 제기한 민경련과 김 소장에 대해서는 소송을 청구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민경련은 대한민국 기업과 거래하는 모든 북한기업을 관리·감독하고 물품공급과 대금결제 등 대외업무를 수행하는 상부기관이고, 김 소장은 민경련과 명지총회사의 소송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북한 기업이 원고인 이 사건의 재판관할권이 한국 법원에 있다고 판단했다. 헌법 제 3조와 국제사법 제2조 1항이 근거가 됐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제사법 제2조 1항은 '법원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재판부는 헌법 제 3조와 관련해 "남북한이 서로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고 남북 교역이 국가 간 무역이 아닌 민족 내부 교역으로 특별한 취 급을 받는 사정을 고려할 때 북한을 독립된 외국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한 사이 법률관계는 국제사법의 규정을 유추 적용해 재판관할권을 정할 수 있다"며 "원고와 피고 사이 계약서가 있고 소송에 필요한 증거들이 대한민국에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한국 법원이 재판 관할권을 가진다"고 했다.
민경련에 가입한 기업 명지총회사는 지난 2010년 아연을 국내 기업들에 공급했으나 이후 5·24 조치로 대북 송금이 금지되면서 전체 대금 중 474만3000여달러(약 53억원)를 받지 못했다며 2019년 물품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인 국내 기업들은 이미 거래를 중개한 중국 기업에 대금을 모두 납부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선고 후 원고 측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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