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선심성 전기료 동결로 유가 인상 부담을 정통으로 떠안게 된 한국전력이 결국 손해를 원전 수출을 통해 메꾸게 됐다. 표심을 잡으려 정부가 떠넘긴 탈원전 부채 폭탄을 아이러니하게 원전을 통한 수익으로 보전하게 된 상황이다.
23일 전력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해외에 수출한 첫 원진인 UAE 바라카 1호기가 이달 말 상업 운전에 돌입한다. 바라카 원전 사업은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4기를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 떨어진 바라카 지역에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전력은 2009년 12월 이 사업을 수주해 2012년 7월 착공했다. 바라카 원전 1호기의 상업운전은 실제 바라카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UAE에 공급·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전은 바라카 통해 얻는 전기 18%를 수익으로 확보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실패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신재생 발전 투자보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라카 원전의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해외 원전의 큰 시장이 올해 본격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UAE 이후 잠잠하던 원전 시장에 최근 체코와 폴란드 등의 해외원전 사업 발주가 시작됐다.
체코는 두코바니 지역에 1000~1200㎿급 원전 1기 건설을 추진한다. 이달 원전 건설 사업을 위한 입찰안내서(RFP)를 발급하는데 사업 규모가 8조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폴란드 정부도 지난해 10월 원자력계획 개정안을 승인하고, 6000~9000㎿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원전 수출 시장에 미온적이었던 우리 정부도 뒤늦게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주 이집트 카이로 페트로젯 본사를 방문해 페트로젯과 협력합의서를 체결했다. 한수원은 현지 선도 건설사이면서 공기업인 페트로젯과 협력을 추진해 사업 참여를 위한 기반을 확보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4일 원자력·국제통상·외교·안보 등 관련 분야 민간 전문가로 꾸려진 '원전 수출 자문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원전 수주를 위한 일종의 선거운동본부를 세웠다.
하지만 '빅마켓'을 앞둔 가장 큰 걸림돌은 여전한 정부의 '탈원전' 기조다. 원전 시장에 진출한다면서도 정작 국내서는 신한울 3·4호기 등 계획된 원전을 백지화 시키면서 생태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반면 그린뉴딜 정책을 먼저 펼진 미국은 최근 정책을 전면 전환하면서 원전 수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해 당초 40년이었던 원전 가동 연한을 현재 80년까지 연장하며 원전 강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그동안 금지해왔던 원전 플랜트에 대한 금융 지원을 다시 재개하며 수출 동력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UAE 상업운전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향후 우리의 경쟁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주한규 서울대학교 교수는 "정해진 기간과 예산 내에서 문제 없이 원전을 완공한 기술력을 입증한 것은 동구권 국가 원전 시장 경쟁에 큰 메리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주 교수는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했다. 주 교수는 "향후 체코와 폴란드 등과 계약할 때도 우리나라의 원전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면서 "협력업체들이 무너지면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경쟁력과 신뢰성을 잃게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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